“김기덕, 비상식적이고 비겁” 여배우 A씨, 눈물

shine2562@donga.com2017-12-15 10: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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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기덕을 고소한 여배우 A씨가 직접 공개석상에 섰다. 신상 공개 등 2차 피해를 우려해 1차 기자회견에서 나서지 않았던 A씨가 큰 용기를 낸 것. 블라인드 너머 자리한 그의 울분에 찬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12월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지1길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는 영화감독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주최한 [영화감독 김기덕에 대한 검찰의 약식기소 및 불기소 처분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여배우 A씨를 비롯해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정슬아, 홍태화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사무국장, 이명숙 변호사, 서혜진 변호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남순아,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윤정주 씨가 참석했다.

앞서 A씨는 2013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 당시 폭행과 더불어 베드신 촬영을 강요했다며 4년만인 7월 26일 김기덕 감독을 고소했다. A씨의 공동변호인단 서혜진 변호사는 8월 기자회견을 열고 김기덕 감독이 뺨을 때리는 폭행 및 시나리오에 없는 베드신을 강요해 결국 영화에서 하차했다고 주장했다. A씨 측은 강제추행치상 및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 고소했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달 검찰 소환 조사에서 폭행은 인정했지만 연기를 지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사전에 협의 없이 남자 배우의 성기를 만지라고 강요한 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폭행 혐의에 대해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강제추행치상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했으며 모욕은 고소기간이 지나 공소권 없음 불기소 결정을 했다. 폭행만 별금형으로 인정한 것.

이에 공대위는 2차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숙 변호사는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 여부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4년이 지난 사건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면 몇 년 전 문자와 기록을 복귀하고 조사했겠지만 이번 사건은 검찰이 전혀 그러지 않았다. 기억도 흐려진 사건이니까 증인을 찾기도 어려웠다.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사람들도 김기덕필름 스태프와 배우들”이라며 “검찰은 핵심적인 인물을 적극적으로 소환하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질 신문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에게 사건을 밝힐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홍태화 사무국장은 해당 사건이 1월 영화인 신문고에 접수된 당시 신고인이 제공한 자료 및 피신고인의 출석 및 서면 사실조사, 주변인 사실 조사 등을 6개월에 걸쳐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폭력’ 관련해 피신고인(김기덕 감독)이 직접 소명한 공문에서 ‘폭행부분에 대한 흐릿한 기억이지만 스태프 두 사람이 목격하고 폭행으로 증언된 만큼 폭행 부분을 인정’했다. ‘성기를 잡게 하고 찍은 사실도 인정’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영화는 실제처럼 보이게 찍는다. 한국영화 제작현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성기 노출하거나 잡는 장면은 모형 성기를 대체해 촬영한다.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에 실제 성기를 잡도록 강요하고 그런 장면을 찍었다는 것은 궁색한 이유에 불과하다”면서 “문제는 제작 현장에 실제 모형 성기를 제작해 놨다는 사실이다. 피신고인은 무슨 의도에서 신고인에게 씻을 수 없는 성적 수치심과 폭행을 자행했는지 알 수 없다. 피신고인 스스로 폭행과 성적수치심을 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면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대위의 발언 이후 여배우 A씨의 발언이 이어졌다. 블라인드 뒤에서 마이크를 잡은 A씨는 호소문 첫 문단부터 눈물을 쏟았다. 볼 수는 없지만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A씨는 “오랜 고민 끝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나왔다. 4년 만에 나타나 고소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고소 한 번 하는데 4년이나 걸린 사건”이라며 “2013년 3월 사건 직후 2개월 동안 집 밖으로 못 나갈 정도로 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누가 내 앞에서 손만 올려도 폭행 충격이 떠올라 참을 수 없는 불쾌감에 시달린다”면서 각종 센터와 변호사 상담, 심리 상담 치료도 시작하고 영화계 지인까지 찾아갔지만 다들 ‘승산 있겠냐. 잊으라’는 조언만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후 김기덕 감독의 대리인 역할을 해 온 김기덕 필름 관계자에게 사전협의 없이 강제로 남자 배우의 성기를 잡게 한 것과 폭행 등에 대해 문제제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김기덕 필름 관계자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가 돌연 돈을 줄테니 촬영한 분량만 쓰거나 촬영을 접어야 한다고 ‘선택’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촬영 중단을 결정한 건 김기덕 감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기덕 필름 측은 여배우가 잠적했다는 거짓을 유포했다”면서 “사건이 공론화 된 후 악플에 시달렸다. 협박에 가까운 글을 남긴 누리꾼 가운데서는 김기덕 감독과 인연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마지막으로 A씨는 “검찰은 다시 한 번만 사건의 증거를 살펴보고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바란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기자회견 말미 질의응답의 시간도 마련됐다. A씨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충격적이고 두려웠다. 명예훼손은 불충분하다고 했는데 이해가 안 된다. 많이 두렵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고소 이후 김기덕 감독 측의 접촉 여부와 관련해서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설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이 내 인생에서 상처가 될지 의미 있는 기억이 될지 나 또한 알 수 없다”면서 “나를 계기로 많은 분이 용기 냈으면 좋겠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시스템도 잘 갖춰졌으면 좋겠다. 나처럼 힘없는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당부했다.

촬영 현장 분위기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A씨가 현장을 떠올릴 때마다 “두렵다” “무섭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질문에 A씨는 “공포스러웠다. 사실 감독님은 첫 촬영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에게 좋은 감정이 아니었고 나도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장에서 폭행을 당했다. 감독님은 ‘연기지도’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구타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감정을 잡게 할 것’이라고 하더니 내 얼굴을 3대 때렸다. 두 대는 강하게 맞았고 나머지 한 대는 본능적으로 몸을 빼는 바람에 손가락이 스쳤다. 그 상황에서 카메라를 켜고 바로 액션을 외쳤다.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도와주지 않았다. 모두 나와 시선을 피했다”고 회상했다. 

A씨는 “김기덕 감독은 남자 배우의 성기를 잡게 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나는 유명한 배우도 아니고 무명이지만 20년 경력이 있는 배우다. 나도 연기 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배우 얼굴을 후려치는 게 폭력이지 어떻게 연기 지도냐. 공포 그 자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울먹이며 “생명을 물건 취급하는 동물조차도 동물보호협회에서 신고하는 세상이다. 나는 사람이다. 김기덕 감독에게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가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얻어맞아야 하느냐. 그러고선 비겁하게 연기지도라고 말하느냐. 김기덕 감독의 행동이 제대로 된 연기 지도인지, 자신의 감정 표현인지 알아봐달라. 부탁드린다”고 마무리했다.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사진|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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