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게 졌다”…일본인들, 韓 걸그룹 보고 놀란 이유는?

주간동아2017-12-11 11: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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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 일본 AKB48과 한국 걸그룹들의 합동 공연 모습.[사진제공·CJE&M]
“강다니엘! 박지훈! 옹성우!”

11월 29일 오후 7시 일본 요코하마에 위치한 대규모 행사장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CJ E&M의 연말 음악 시상식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가 열렸다. 1만5000석 규모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은 첫 시상 부문인 올해의 신인상을 워너원(Wanna One)이 받자 멤버 11명의 이름을 하나씩 외치며 환호했다. 일본까지 따라온 국내 워너원 극성 팬들? 아니, 대부분 일본 팬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일본 젊은이들은 워너원 한국 팬들만큼 이미 워너원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듯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MAMA는 2010년부터 해외에서 열렸다. 그동안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권 도시에서 열리다 올해 처음 일본에서 개최됐다. 김현수 CJ E&M 음악컨벤션사업국장은 “일본 내 한류 붐이 다시 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시상식이 한류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월 일본 도쿄 시부야에 걸린 워너원 한국 앨범 광고.[사진제공·CJE&M]
● 데뷔도 안 한 ‘워너원’의 인기

다시 워너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워너원은 아직 일본에서 정식으로 데뷔하지 않았다. 그들이 8월에 낸 데뷔 음반을 9월 말 일본에서 직수입해 판매했을 뿐인데도 놀랍게도 앨범 발매 첫 주 일본의 공신력 있는 음악 차트인 ‘오리콘 차트’ 앨범 부문에서 3위를 기록했다.

워너원의 인기는 현지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워너원 팬이라는 고등학생 다카하시 유이(17) 양은 “일본에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등을 통해 워너원에 관한 정보를 대부분 봤다”며 “일본 아이돌그룹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힘차고 활발한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가수 보아,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용준 등으로 시작된 일본 내 한류는 동방신기, 카라, 소녀시대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 내 한류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는 최근까지 한류 콘텐츠가 중화권 위주로 진출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발표된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보고서(2015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나라 한류 콘텐츠 수출액의 26.6%(14억5071만 달러·약 1조5835억 원)를 차지해 비중이 가장 큰 나라로 나타났다. 그 전까지 1위였던 일본은 25.6%(13억9849만 달러)로 2위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맞서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 조치가 이어지면서 대(對)중국 한류 콘텐츠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팬미팅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광고모델이 바뀌는 한류 스타가 하나 둘 생기자 국내 대중문화계는 타깃을 다시 일본으로 바꿨다.

‘태세 전환’이 가능했던 것은 TWICE(트와이스), 방탄소년단(BTS), BLACKPINK(블랙핑크) 등 새로운 한류 스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본 10대들 덕분이다.

9인조 걸그룹 트와이스의 일본 데뷔 싱글 ‘TWICE : One More Time’은 발매되자마자 20만 장 넘게 팔리며 오리콘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해외 국적 가수가 일본에서 발표한 데뷔 싱글로는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

이들은 기획사나 현지 에이전시 중심이 아닌, SNS와 유튜브를 바탕으로 일본 여고생들을 끌어들였다. 트와이스가 일본에 진출하기 전부터 춤 동작인 ‘TT포즈’가 SNS에서 인기몰이를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TT포즈는 최근 일본에서 발표된 ‘10대가 선정한 올해 유행한 것(コト)’ 부문 1위에 올랐다. 트와이스의 일본 활동 기간은 아직 6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죽은 한류가 되살아나자 굳게 닫혔던 일본 내 지상파 프로그램의 ‘문’도 열리기 시작했다. 트와이스는 이달 말 일본의 대표 연말 음악축제인 NHK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에 출연한다. 한국 가수의 출연은 2011년 카라, 소녀시대 이후 6년 만이다. 방탄소년단도 이달 말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 음악방송인 TV아사히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할 계획이다.

걸그룹 트와이스가 12월 2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카카오미니와 함께 하는 2017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한국에게 졌다”

한류 부활은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이뤄졌다. 일본 내 한류 전문가인 니다이라 마유미(仁平眞弓) 씨는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한류는 일본에서 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좋아하는 보편적인 것이 됐다”며 “올해는 한류 부활의 분기점”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 발라드 가수 성시경이 일본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 등 기성 가수들까지 진출 계획을 세웠다.

한류의 선전에 놀라는 일본인도 적잖다. 일본 젊은 층을 파고든 한국 음악의 저력이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제이팝(J-pop)이 케이팝과 비교된다”며 일본 음악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MAMA에서 한국 걸그룹들과 일본 최고 인기 걸그룹 ‘AKB48’의 합동 공연 후 부쩍 많아졌다. 귀여운 모습을 추구하는 일본 걸그룹에 비해 소위 ‘칼군무’라 부르는 절도 있는 춤을 추며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추구하는 한국 걸그룹에 대해 ‘수준 차이가 난다’ ‘한국에게 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뀔 수 있다. 내년 상반기 Mnet은 AKB48 측과 손잡고 새로운 ‘프로듀스 101’을 만들 계획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걸그룹 육성이 목표다. 이를 통해 일본 내 한류가 더욱 견고해질 수 있겠지만, 반대로 한국에 AKB48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부활한 한류가 한일관계나 정치 문제로 또다시 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는 한류 콘텐츠 수출의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도 일맥상통한다. 수출액 비중으로 보면 북미(16.2%), 동남아(14.6%) 등 다른 나라는 중국, 일본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상황이다. 김휘정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문화팀 입법조사관은 “남미·중동·아프리카 등 인구가 많고 한류 콘텐츠의 지속적인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는 지역에도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상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조사연구팀장은 “온라인을 통해 자유롭게 한류에 관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등 해외 현지에 자발적 한류 수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범석 동아일보 기자 bsism@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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