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열사 김부선 “비리 고발하려다 전과 5범 됐다”

주간동아2017-12-04 11: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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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선 씨가 최근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그만둔다는 내용이 담긴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 제공·김부선]
‘나라를 위해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해 싸운 사람’을 ‘열사(烈士)’라고 부른다. 2014년 영화배우 김부선(56·사진) 씨가 ‘열사’ 반열에 올랐다. 아파트 난방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주민들과 폭행사건에도 연루됐지만, 서울시와 성동구청 조사에서 김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자 국민은 그에게 ‘난방열사’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난방비 비리를 해결하고자 외롭게 싸워온 여배우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아파트 관리비의 민낯을 들췄다.

이후 김씨는 ‘투명한 아파트 문화를 만들겠다’며 서울 옥수동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 출마, 당선했다. 그런데 그가 최근 돌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그만둔다는 플래카드를 아파트에 내걸었다. 그것도 ‘007’ 작전하듯 한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한민국 아파트 비리를 고발한 게 사람을 이렇게 힘들 게 할 줄 미처 몰랐네요. 난방열사는 망했어요. 이제 안 하려고요.”

최근 서울 옥수동 ???아파트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안방에는 각종 소송서류와 아파트 법령집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거실에는 최근 소송 서류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놓여 있었다. 누렇게 바랜 2013년 난방비 ‘0원’ 가구 서류는 물을 쏟은 듯 자국이 선명했다.

김부선 씨 집 거실에는 소송장이 쌓여 있다. [지호영 기자]
불의에 초연하게…

“(소송) 서류를 보면 제가 한숨을 내쉬니 집에서 기르는 개도 싫은가 봐요. 서류만 눈에 띄면 그냥 볼일을 보네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모습에 체념의 상흔(傷痕)이 묻어났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와 전쟁 내막은 5시간 인터뷰로도 부족해 11월 29일까지 간헐적으로 전화 인터뷰를 이어갔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 많이 지쳐 보인다.
“괴롭다. 투명한 아파트 문화를 만들려고 나섰지만 지난 3년간 검찰과 경찰에 불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다. 불의에 맞선 결과는 불행 그 자체다. 이젠 불의에도 초연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일부 주민과 소송 때문인가.
“회장이 되고 나서도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2014년 이른바 ‘난방비리’를 폭로해 이웃들이 도둑질당하는 난방비를 잡아냈고, 그해 10억 원이 든다는 개별난방 공사도 사업설명회를 통해 4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온수요금, 난방비를 안 낸 사람들은 나를 ‘가해자’로 몰아갔고, 주민설명회를 하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해 그걸 제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나고, 명예훼손 소송에 불려 나가고….”

▼ 난방비 문제는 2015년 구청과 경찰 조사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난방비가 아주 적거나 ‘0원’인 가구주들의 정당한 소명을 원했지만 ‘여행을 다녀왔다’ ‘난방을 끄고 살았다’ 같은 답변을 들었다. 여행을 다녀왔다면 비자 서류 같은 증빙을 내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보라. 집에 아무도 없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검침원은 외부에 달린 열량계를 보고 검침하고 요금을 부과한다. 그런데 실제 사용량을 알려주는 내부 기기(메인 검침기) 연결선을 끊으면 난방을 해도 외부 열량계 숫자는 그대로다. 검침 기록이 지난달과 같다면 당연히 연락해서 확인하고, 지난해 동월 기준 요금을 내라고 하던가 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그러니 주민들이 전직 동대표나 아파트 간부들, 관리사무소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거다. 2015년 5월 성동구청이 합동조사를 했을 때 참여한 인사에게 들어보니 ‘회계 서버 문제는 누군가에 의해 수정된 것으로 보여 회계감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 당시 구청은 이 대목은 빼고 장기수선충당금 문제 등을 발표했다.”

▼ 누군가 회계장부에 손을 댔으면 기록이 남을 거 아닌가.
“서버 로그기록을 아무나 볼 수 없으니 조사에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이 문제를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니 주민 갈등만 양산되고…. 그래서 ‘이건 아니다’ 싶어 2016년 초 난생처음 동대표와 회장에 출마했다. 한번 바꿔보려고.”

김부선 씨가 입주한 아파트 전경. [지호영 기자]
▼ 결과는 좋았는데.
“과거 임원을 했던 사람이 다시 회장 선거에 나왔는데, 그 사람은 중임제한 조항에 걸려 동대표 당선이 무효가 됐다. 그래서 동대표로 단독 출마해 당선했다. 그 과정에서 전 부녀회장은 나를 보고 ‘개X 안 치우는 여자다’ ‘회장 자격이 없다’고 소리쳤다 명예훼손 등으로 1심에서 벌금 300만 원 처분을 받았다. 다른 전임 동대표는 회식 자리에서 ‘김부선 씨가 몸 팔아 연예활동을 한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벌금 100만 원 약식명령 판결을 받았다. 이게 뭐하는 건지….나도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지금까지 500만 원가량을 병원비로 썼다. 그래서 민사소송을 청구해 승소하기도 했다.”

김씨는 2014년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난방비 비리 의혹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전·현직 동대표들 난방비 처참’이란 글을 올려 15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아파트 난방 방식을 논하는 자리에서 전 부녀회장 윤씨와 몸싸움을 벌여 쌍방 상해혐의로 벌금형을 받는 등 여러 차례 법원을 오갔다.

김부선 회장 해임투표절차 진행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서울 고법 판결문. [지호영 기자]
김씨는 일부 동대표는 물론, 관리소장과 관계에 대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내 집은 2016년 2월부터 아파트 방송이 나오지 않고 인터폰도 안 된다.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관리소장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나와 상의 없이 공고를 냈는데, 나의 직인은 생략했더라. 사문서 위조가 아닌가(성동구청은 관리소장 월권·위법행위에 대한 행정조치 공문을 보냈다). 회계감사 결과 4700여만 원을 환수받아야 하는데 회계감사보고서를 입주민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변호사 비용에 대해서도 협조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나. 그래서 서울시에 위탁관리를 맡기려고 ‘서울시 민간아파트 공공위탁관리 아파트’로 선정되기 위해 정문 앞에서 직접 서명을 받았다. 전체 주민의 70%에 육박하는 서명을 받았고, 주민들은 ‘수고하는데 도와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며 음료수와 빵을 건넸다. 어찌나 고맙던지…. 공공위탁관리를 맡기려고 노력하니 변화가 생기더라.”

“이제 좀 쉬고 싶다”

▼ 회장을 하면서 업체로부터 ‘제안’은 없었나.

“그러한 ‘은밀한 제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바꿀 때 아파트 입찰 시스템을 알게 됐는데, 나는 구청관계자와 언론인 등이 참여한 공개설명회를 열었다. 그랬더니 10억 원짜리 공사를 4억 원에 할 수 있었다. ‘제안’을 기대한 사람들은 서운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혜택은 입주민 전체가 봤다. ‘보일러 한 대 (무료로) 놓아드리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는데 거절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명절에 인사차 봉투를 건네는 것도 거절했다. 생각해보니 아파트 비리를 키우는 건 입주민의 무관심이다. 입 벌리고 누워 있으면 감이 떨어지나. 무관심은 결국 ‘해먹은 사람들이 또 해먹는’ 아파트 임원의 장기집권을 부르고, 이는 곧 부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이제 좀 쉬고 싶다. 명색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데 야밤에 나 혼자 플래카드를 달았다. 나는 할 만큼 했다.”

한편 주간동아 확인 결과 8월 25일 성동구청이 옥수동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보낸 공문은 2016년 9월 2일 발송한 것이었다(13쪽 공문 참조). 김씨의 주장처럼 구청장 직인과 담당 공무원 결재란은 공란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2017년 8월 25일 아파트 관리사무소 접수 도장만 눈에 띄는 만큼 당연히 올해 보내온 공문으로 생각될 듯 했다.

‘요청을 받은 선거관리위원회는 해임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문구는 김씨의 말처럼 선관위원에겐 큰 부담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성동구청 관계자는 “관리소장의 요청이 있어 단순히 내용 확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직인 등이 없는 문서를 관리사무소 측에 다시 보냈는데, 민원 제기가 있어 입주민들의 오해 여지가 없도록 문서 수정 요구 및 재발 방지에 대한 행정지도를 했다”고 밝혔다.

회계 서버와 관련한 김씨의 지적에 대해서는 “주택관리사 등 전문가를 불러 확인했는데 구체적인 서버 수정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다”며 “회계장부 수정이 의심된다면 수사의뢰를 해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1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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