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진단받은 아빠 “내가 딸에게 병 물려주다니…”

celsetta@donga.com2017-10-24 18: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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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Vanessa Silva/People
미국 뉴저지 주 우드브릿지에 사는 아널도 실바(67) 씨는 네 자녀를 홀로 키워낸 ‘싱글대디’입니다. 그는 특히 딸 바네사(42)씨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빠인 자신이 딸에게 유방암을 일으키는 BRCA2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 주어 함께 유방암 투병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BRCA2 유전자는 손상된 DNA를 수리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로, 이것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집니다. 유명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집안에 유방암 가족력이 있으며 본인 역시 BRCA2 돌연변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암 발병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지난 2013년 유방 절제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녀(父女)가 같이 유방암으로 투병한 실바 가족 사연은 10월 23일 피플(People)에 소개됐습니다. 아널도 씨는 약 10년 전인 2007년 샤워 도중 오른쪽 유두 아래에 멍울이 생긴 것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자인 자신이 유방암에 걸릴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아널도 씨는 매우 놀랐습니다.

“본인이 걸릴 수 있는 병 중 ‘유방암’도 있다는 걸 아는 남자는 아마 많지 않을 겁니다. 저도 진단 받고 놀랐지만 일 년에 3000명 정도의 미국 남성이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고 해요. 그 중 400명은 결국 사망하고요.”

조직검사 결과 아널도 씨는 유방암을 일으킬 수 있는 BRCA2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여자 형제 중 한 명, 이모들 중 다섯 명이 유방암으로 숨졌지만 아널도 씨는 남자인 자신에게도 유방암 유전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남성 유방암은 여성에 비해 드물게 발견되지만(한국 전체 유방암 발병사례 중 0.6~3%가 남성 유방암), 남성에게도 유방 조직이 약간 존재하기 때문에 완전히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사진=Vanessa Silva/People
병원에서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아널도 씨의 자식들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라며 가족 전체에게 검사를 권유했습니다. 네 자녀 중 바네사 씨와 아널도 3세(38)씨에게서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정밀검사 결과 바네사 씨는 이미 유방암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식들에게 암 유전자를 물려주다니… 미안하고 죄스러웠습니다. 내 자식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애들에게도 암 유발 유전자가 전해질 거라 생각하니 더욱 슬펐어요.”

딸 바네사 씨는 “그래도 아빠 덕에 빨리 발견할 수 있었잖아요”라며 아널도 씨를 다정하게 위로했습니다. 바네사 씨 말대로 발견이 빨랐기에 치료는 비교적 순조로웠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유방암과 싸워 이겼습니다.

‘암 생존자’라는 자랑스러운 칭호를 얻게 된 부녀는 유방암 관련 행사나 학회에 자주 초청돼 자신들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널도 씨는 남성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성이 유방암에 걸린다는 건 창피한 일도 숨겨야 할 일도 아닙니다. 가슴이 붓거나 혹이 만져지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합니다. 대개 통증은 없지만 아픈 경우도 있어요. 무언가 이상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진단을 받으세요. 많은 남성 유방암 환자들이 ‘그냥 혹이 났나보다’하고 방치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습니다.”

딸과 함께 병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아널도 씨. 그는 “무엇보다 바네사가 무사하다는 게 가장 기쁩니다. 딸이 제 곁에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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