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피’ 가진 히어로…헌혈로 200만 명 살린 할아버지

celsetta@donga.com2017-10-18 17: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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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사는 제임스 해리슨(80)씨는 넉넉한 미소를 지녔습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푸근하고 정 많은 동네 할아버지 같지만 사실 해리슨 씨는 자신의 ‘피’로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진짜 슈퍼히어로입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황금 피를 가진 사나이’로 널리 알려진 해리슨 씨는 18세 때부터 지금까지 매 주 꼬박꼬박 헌혈했습니다. 14세 때 심장수술을 하면서 무려 13리터에 가까운 피를 수혈 받고 살아난 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헌혈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헌혈해준 사람들 덕분에 큰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하게 성장한 해리슨 씨는 헌혈할 수 있는 나이인 18세가 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가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신의 피 속에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레소스병(Rh병)이라는 병이 있다. 아이와 엄마의 Rh혈액형이 다를 경우 심각한 빈혈과 뇌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데 매년 수천 명의 아이들이 이 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며 해리슨 씨의 혈장 안에 레소스병을 막을 수 있는 항체가 들어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자신의 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슨 씨는 적극적으로 피를 제공했고, 1960년대에는 그의 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레소스병을 막는 안티디(Anti-D) 백신이 발명됐습니다. 이 항체를 가진 사람은 호주 전역을 통틀어 50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2017년 현재까지도 호주에서 생산되는 안티디 백신의 상당량은 해리슨 씨의 피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호주 적십자사에서 근무하는 의사 젬마 팰컨마이어 씨는 CNN에 “그가 어쩌다가 레소스병 항체를 갖게 됐는지는 불분명하다. 14세 때 엄청난 양의 혈액을 수혈 받는 과정에서 항체가 생기지 않았나 추측만 할 뿐이다”라며 “분명한 것은 해리슨 씨 덕분에 지금까지 수백만 명의 아이와 산모가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우리들의 영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1000번 이상 헌혈을 했지만 여전히 바늘이 무섭다는 해리슨 씨.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 받으며 여러 차례 표창 받은 그는 “주삿바늘이 팔에 들어갈 때면 일부러 딴 곳을 보고 간호사와 이야기를 한다. 바늘도 무섭고 아픈 것도 싫지만 내 피로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매 주 헌혈을 거를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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