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29년 기억 잃은 엄마, 딸들 못 알아보고…

celsetta@donga.com2017-10-05 01: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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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씨(가운데)와 맏딸 사라(좌), 시안(우). 사진=Rowan Griffiths/Sunday People
“늘 사랑이 흘러 넘치던 엄마의 눈동자에 더 이상 아무 감정도 담겨있지 않다는 걸 느꼈을 때… 우리 자매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라(23)씨와 시안(20)씨는 18년 전 큰 교통사고로 ‘엄마’를 한 번 잃었습니다. 당시 29세였던 엄마 엘리자베스(47) 씨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남았지만 사고 이전의 모든 기억을 잃었고 사랑하는 남편과 두 딸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애정을 갈구해도 그저 남의 집 아이를 보듯 어색해 하는 엄마 모습에 아이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더 이상 우리 엄마가 아니었어요. 하루아침에 달라진 엄마 모습에 충격 받을 수밖에 없었죠.” 맏딸 사라 씨는 9월 30일 영국 미러(Mirror)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느꼈던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씨는 2년 동안이나 병실에 누워있어야 했고, 어린 사라는 학교-집-병원만을 오가며 엄마가 자기를 알아봐 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엄마도 아빠도 너무 지쳐 있었고 저도 감정적으로 방전된 채 성장했습니다. 부모님은 학교 행사에 단 한 번도 와 주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제가 따돌림 당한다는 연락을 받고도 어머니는 수수방관했죠.”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라 씨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마약에 손을 대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약에서 벗어나 무사히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두 살이었던 동생 시안 씨는 “전 워낙 어렸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다른 사람이 됐다는 건 알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고 전 엘리자베스 씨와 두 딸. 사진=Rowan Griffiths/Sunday People
고통스러웠던 것은 엄마 엘리자베스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의 8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겪고, 다섯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겨우 살아남았지만 29년간의 기억이 송두리째 날아가 대체 자기가 누구고 어떻게 살아 온 사람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가족사진 속에 찍힌 것은 분명 본인 얼굴이었지만 가족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엄마, 엄마 하고 안겨오는데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는 거예요. 사진 속의 나는 이 아이들을 안고 있는데, 기억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어떻게든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기억난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8년 간 이뤄지지 않은 기적을 기다리는 대신, 엘리자베스 씨 가족은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족으로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가기로 한 것입니다. 막내 시안 씨는 “엄마가 사고 이전의 기억을 찾지 못하신다 해도 우리 가족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엄마가 힘들어 하시는 걸 보면 우리도 힘들지만, 새로운 기억을 채우며 또 다시 ‘가족’을 만들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아무리 슬픈 밤을 보냈어도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옵니다. 절망할 시간에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로 한 엘리자베스 씨 가족.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도, 행복은 이미 현관 앞에 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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