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노숙-가난 겪었어도 제일 힘든 건 외로움”

abroad@donga.com2017-08-30 13: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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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소설가 이외수는 겉모습에서 풍겨져 나오는 도인(道人)같은 풍모와 별개로 끊임없이 속세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최근 작품인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를 비롯한 전작들에서 개인의 내면과 사회의 문제점을 녹여낸 이야기들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문인(文人)임 분명히 했다.

또한, 그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 활동을 통해 다소 민감한 정치적 발언들도 해왔다. 그리고 청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소위 예술가라는 이들이 대중과 작품 이외의 방식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일정 부분 이외수 작가의 공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행보는 늘 그를 비판하는 이들의 좋은 소재거리가 되어왔다. 작품에만 전념한다면 ‘대하기 어려운 소설가’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이외수 작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이 질문을 품고 화천 감성마을에서 이외수 작가와 만났다.


Q. 지난 40년 동안의 활동으로 이외수 문학관과 감성마을이 생겼다. 이만한 위업을 달성하기까지를 되돌아본다면?

A. 우선은 굉장한 과정이었다. 나는 속칭 ‘듣보잡’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출신 학교가 어디냐에 따라 선후배끼리 도우면서 밀고 당기는 것도 있는 법인데 난 그런 도움을 못 받았다. 특히 문단에서의 선후배 관계는 전무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외롭고 그런 현실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에 ‘더 치열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노숙도 했고 가난도 겪었지만 그 중에서 제일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Q. 강박관념에 외로움까지 겪었다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나.

A. 내 작품 중에 ‘겨울나기’라는 작품이 있다. 거기에는 한 청년이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해골 위에 노란 나비가 내려앉는 장면을 보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이 작품이 나의 습작 시절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사는 암담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다가 ‘들개’라는 작품은 내가 어떤 정신적 대들보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썼다. 거기에서는 예술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작가 이외수.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Q.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해야 할 일인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A. 평범하게 살고 싶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래서 평범하게 살고자 취업도 하려고 했다. 지방지 기자도 했고 삽화도 그려봤다, 심지어는 가게를 내고 도장 공부 인쇄물 사업도 해보고 학원 선생도 해봤다. 젊을 때 구두닦이부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예술은 내게 마약 같았다. 안하면 금단현상이 생기더라. 예술을 하지 않는 나는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Q. 금방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늘 예술가들은 ‘결핍’ 이야기를 한다. 당신에게서 가장 결핍된 부분은 뭔가.


A. 내가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 모성에 대한 결핍이 가장 심했다. 그것은 내 평생의 끊임없는 목마름이고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나중에 아버님이 재혼 하셨고 새 어머니도 나에게 정말 잘해주셨는데도 그 모성에 대한 갈구는 사라지지 않더라. 마치 늑골 하나가 빠져나간 느낌이다.


Q. 그런 결핍을 안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A. 사회적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과거 내 별명이 춘천 거지였다. 노숙도 하고 구걸도 하면서 살았던 그 당시에도 나는 애정 결핍이 심했다. 누구를 사귀려고 하면 내 조건은 다 불충분 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드렸는데 나를 허언증 환자 취급을 받곤 했다.




작가 이외수.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Q. 왜 과거의 당신은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던 걸까? A. 많은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그러다 보니 내 겉모습을 보고 나를 신뢰하지 않은 것 같다. 난 솔직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운동도 할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고 말을 해도 그걸 믿지 않더라. 직접 보여드리면 믿는 분도 종종 있긴 했지만. Q. 이런 관계 형성의 어려움 때문에 SNS를 시작하게 된 것일까? A. 아까 말한대로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을 해야 믿는 분들과 달리 SNS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무한한 상상력으로 상대를 판단하게 되는 공간이다. 그것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글로 다가가야 하는 공간이어서 내가 호감을 사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던 것 같다. Q. 그동안 SNS에서 청년들을 위한 발언과 별개로 정치적 발언들을 해서 문제가 되곤 했다. A. 예나 지금이나 난 가식보다는 진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SNS에서 그동안 사회에 대한 부패나 악습에 대해서 직언을 해왔다. 그런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방산비리 같은 것은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중대한 범죄다. 맹렬히 지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정치적 잣대로 바라보는 자들은 나를 종북 좌파라고 하고 사회적 활동도 못하게 올가미를 씌우는 정치적인 작태는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Q.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야기도 있고 사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역시 자체검열을 하기 때문 아닌가. A. 맞다. 소위 ‘알아서 기게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젊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 젊을 때는 삶의 무기를 많이 갖추지 못하는 시기이고 그러면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비굴하게 남의 눈치를 봐야 겠느냐.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다운 행동을 못할 때는 불행해지는 것이다.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나 체제 속에서 인간은 불행해 진다. Q. 작가 뿐만 아니라 개인으로도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일 것 같다. A. 어떤 분들은 내게 '당신이 소설가라면 소설을 써야지. 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곧 등산가는 산만 올라가고 식당 하는 분은 음식만 만들라는 이야기다. ’본인의 일 외에 아무것도 관심 갖지 말라‘는 것은 기계가 되라는 이야기와 같다. 차라리 그런 분들은 로봇을 구입하시길 권유한다. 작가에게 오로지 글만 쓰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사고다. 마치 뇌를 빼놓고 사는 이들이 할 말이다. 

작가 이외수.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Q. SNS 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종종 출연했다. 일상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A. 없었다. 나는 사실 예능 출연 전에도 안팎으로 늘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가식보다는 진실을 추구하고 솔직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Q. 그러나 이런 솔직함을 불편해 하는 이들도 있다.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과의 법적분쟁도 겪지 않나. A. 세상이 다 진실을 보는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예로 나를 공격하는 이들은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감성마을을 두고 지자체에서 국민의 혈세로 내게 어마어마한 특혜를 준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화천군이 내게 여기를 헌납한 것처럼 알리고 선전, 선동을 하지만 이 공간에 내 소유는 아무 것도 없다. 손바닥만한 땅도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사실이 아닌 그들의 공격에 부담을 느낄 이유가 없다. Q. A.I 등과 같은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라질 직업으로 글 쓰는 분야가 늘 거론된다. 여기에 대한 생각은? A. 과학 기술이 분명 생로병사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것을 안 아프게 해준다던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희로애락의 문제는 어쩔 것인가. 사람은 물질적인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 영젹 요소도 함께 지닌 존재다. 지금 과학이 이런 부분까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데 이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Q. 그만큼 감성보다 이성이 중시되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A.I가 발전해도 예술의 영역까지 들어오지는 못하는 걸까. A. 요새 사람들은 감성을 무가치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알파고가 바둑을 잘 둬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 곧바로 A.I가 세상이나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의 본성을 결국 사랑이다. 사랑이란 만물이 태어나고 소멸하는 과정인데 이것을 A.I가 이해하고 생성할 수 있겠는가. 그 정도까지 되려면 A.I가 굉장한 진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Q. 창작분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창작이란 무엇이고 영감이란 무엇인가. A. 누군가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건 창작 행위를 기술적인 면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기술은 반복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 습득이 가능하지만 창작은 다르다. 이 부분은 영적,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창작하는 인간과 신의 교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감(靈感)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것은 어느날 머릿 속을 갑자기 스치는 것이 아니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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