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마흔에 은퇴, 6년째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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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화점2021-03-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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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기획] <1> 한국형 파이어족 커뮤니티 꿈꾸는 '대퐈마' 자매

<3~40대, 사회 통념상 한참 일할 나이에 은퇴했거나 은퇴를 꿈꾸는 사람들을 ‘파이어(FIRE·경제적독립과 조기은퇴를 의미하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족’이라 부른다. 통장이 아니라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서 대세와 다른 삶을 선택한 파이어족들의 이야기.>
파이어족 '대퐈' 신현정(좌), '퐈마' 신영주(우) 씨. 사진=파이어족-대퐈마TV
한 살 터울인 신현정(대퐈)·신영주(퐈마) 씨 자매는 파란만장한 2~30대를 보냈다. 의류사업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상경했으나 사기를 당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해 남대문에 작은 의류매장을 열었다. 2호점까지 낼 정도로 사업을 키웠지만 두둑해지는 지갑과 반대로 마음은 피폐해져만 갔다. 지독한 번아웃이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느낀 자매는 사업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떠나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복한 1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자 다시 먹고 사는 문제가 눈 앞에 놓여 있었다. 사업은 나름대로 잘 되었지만 2012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점점 생각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등이 한데 엉켜 고민하다가 ‘최대한 돈을 모아 조기은퇴하기’, 즉 파이어족의 삶을 선택했다. 현재는 ‘대퐈마(대퐈, 퐈마)’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파이어족과 관련된 정보를 나누고 있다.

파이어족들의 선택은 ‘계속 지금처럼 살 수는 없다’는 위기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젊은 나이에 은퇴한 이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은퇴한 것이 아니다. 6~70대 은퇴자들이 사회생활과 수익활동을 하며 활기를 유지하듯 파이어족 또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하기 싫은 일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선택한 길이라는 것. 6년차 파이어족 대퐈마 자매를 이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39·40세에 은퇴, 6년차 파이어족입니다
대퐈, 퐈마 / 안녕하세요. 각각 40세, 39세에 조기은퇴 후 6년째 잘 살아가고 있는 파이어족 ‘대퐈마’ 자매입니다. 유튜브 [파이어족_대퐈마TV] 채널을 운영하고 있고, '파이어족의 재테크' 책도 썼습니다. 한국에 제대로 된 파이어족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미국식 '파이어'는 젊은 고학력·고소득자들이 극단적으로 아껴서 우리 돈으로 20억 정도의 순자산을 모은 다음 은퇴한다는 생활방식이었는데요. 두 분은 이와 달리 '한국형 파이어족'을 목표로 삼으셨어요.

퐈마 / 미국식 파이어 운동은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미국보다 사회진출 나이도 평균적으로 높고, 소득이나 생활비 같은 여건도 다르고요.
대퐈 / 은퇴할 수 있는 목돈의 금액을 ‘1년 생활비의 25배’가 아니라 ‘최소생계비(MCL: Minimum Cost of Living)의 25배’로 잡습니다.

최소생계비가 다 마련됐을 정도의 현금 흐름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돈 때문에 하고 있던 하기 싫은 일에서 은퇴를 결정하고, 상황에 맞는 투자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는 콘텐츠 투자를 병행하여 순자산을 불리고 돈이 들어오는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일에서 은퇴하고 진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형 파이어족(K-FIRE)의 특징이라고 봐요.
“파이어족으로 살려면 경제공부는 필수”
교통비, 식비, 취미생활에 드는 돈 한 푼도 바짝 아껴 모은 5억 원을 가지고 은퇴한 대퐈마 자매에게 지금은 어떤 재테크를 하냐고 물었다. 부동산·주식투자 등으로 목표했던 자산 금액을 달성한 자매는 현재 적극적 투자보다는 콘텐츠 투자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의 영향력이 더더욱 확대된 세상에 발맞춰 새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물론 경제공부는 절대 놓지 않는다.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한 뒤 어떻게 경제공부를 시작했나요.

대퐈 / 우선 자본주의에 대해서 영상과 책을 통해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부자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연구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된 공부 법은 관련 책을 많이 읽는 것이었습니다. 필요한 강의도 들었고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 이후부터 투자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거시경제, 즉 미국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기의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일환으로 미국 다우지수와 나스닥 지수를 체크하고 Fed 의장의 발언에 귀 기울이며 세계 뉴스 중 큰 이슈는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한국의 경기 흐름도 이해할 수 있더라고요.
사진=파이어족-대퐈마TV
최근 '파이어족의 재테크' 책을 출간하셨는데, 두 분의 재테크 원칙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퐈마 / 경제적 자립을 위한 목돈마련은 ‘절약과 부업을 통한 돈 모으기’ 방법을 추천하고, 한국형 파이어족이 된 이후에는 경기의 흐름에 따라 ‘투자자산에 투자를 해서 순자산을 불려 나가는 동시에 콘텐츠 투자를 병행’하는 방법’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을 예로 들면, 목표로 잡은 5억 원(1년 최소생계비의 25배)까지는 노동소득과 절약으로 모았습니다. 파이어족이 된 이후에는 경기가 호황으로 가는 시점(2015년)이라는 판단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자산을 불렸고요. 지금은 콘텐츠 투자인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병행하며 ‘대퐈마’라는 이름을 브랜드화하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지요.

대퐈 / 파이어족이 된 이후에는 돈을 급격하게 불리기보다는 자산의 가치를 유지하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투자는 지양하는 편입니다. 위험관리가 용이한 자산에 투자하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희의 원칙입니다.

책에서 '당신이 지금 30대라면 시간은 당신 편이다'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파이어족이 되고 싶은 2~3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퐈 / 2030세대들이 종자돈을 크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대신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적은 돈이라도 아끼고 모아서 투자를 시작한다면 누적된 시간이 힘을 발휘하여 큰돈으로 불려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미국 인덱스 펀드인 S&P500지수의 지난 50년간 연평균 수익률(9%가 넘습니다)보다 낮은 7.2%의 수익률로, 똑같은 종자돈을 30대와 40대가 각각 투자 했을 때 노후자금은 2배 이상으로 벌어집니다.

만약 1억 7500만 원 종자돈으로 35세인 A와 45세의 B가 투자를 시작하면
▶45세인 B는 65에 4억 원/ 75세에 4억 원/ 85세에 4억 원씩, 총 12억 원을 사용할 수 있지만,
▶35세인 A는 65세에 8억 원/ 75세에 8억 원/ 85세에 8억 원씩, 총 24억 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40대 이상도 파이어족 라이프를 준비할 수 있을까요?

퐈마/ 당연합니다. 사실 파이어족이란 나이의 제한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말하는 ‘파이어족은 늦어도 40대 초반까지 조기 은퇴한다’라는 정의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65세를 정년이라고 본다면, 50세에 파이어족이 되어도 15년이 빠른 것이고 60세에 파이어족이 된다고 해도 5년이 빠른 것입니다.

만약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정년을 다 채워 일하고 65세에 은퇴했다 해도 노후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죠. 경제적 자립도 되어 있고, 길어진 수명에 발맞추어 은퇴 후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지에 대한 계획이 명확하게 세워진 상태입니다.
사진=파이어족-대퐈마TV
파이어족에게 필요한 마인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대퐈 / 파이어족은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지향하면서도 자신의 삶은 자기 힘으로 책임지며 살겠다는 독립심과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에요.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팩트에 집중하고 정확한 통계에 근거해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반드시 맞는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인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해요. 자기 자신을 믿고 부화뇌동하지 않는 마음도 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론이나 인터넷에 노출 된 뉴스들의 소음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기준을 정립하며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어족이 되기에 적합한 성향, 또는 적합하지 않은 성향이 있을까요?

퐈마 / 파이어족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정해진 직업이나 성격이나 성향은 없지만, 대체로 안정적인 직장에 만족하며 다니고 있거나 스트레스에 덜 예민한 성향의 사람들은 파이어족이 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강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삶이 어느 정도 만족스럽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스트레스가 심한 사람, 특히 강한 동기부여(나이 드신 부모님, 어린 자녀들, 건강 등)가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방법도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사진=파이어족-대퐈마TV
염원하던 은퇴를 이룬 지 6년째, 자매는 여전히 여유로우면서도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푹 자고 일어나 명상과 늦은 아침식사를 한 뒤 전날의 미국 증시 등 경제이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를 한다. 유튜브·블로그용 콘텐츠도 만든다. 책쓰기, 인터뷰 등 스케줄 관리도 놓쳐선 안 되는 일.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산책, 영화감상 등 취미도 마음껏 즐긴다. 각자의 특기와 관심사를 살려 글쓰기는 주로 대퐈가 맡고 비주얼 작업은 퐈마가 담당 중이다.

열정적으로 활동 중인 두 사람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머지 않은 미래에 ‘한국형 파이어족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자매에게 5년, 10년 뒤의 희망사항을 물어보았다.

퐈마 / 5년 뒤에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파이어족 커뮤니티가 만들어져 있기를 바라봅니다. 파이어족들은 독립적이면서 자유롭기에 어떤 구속이나 강한 규정보다는 각자의 삶을 소개하고 응원하면서 자유롭게 살다가 힘들거나 벽에 부딪혔을 때, 서로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주는 그런 커뮤니티이기를 바랍니다.

대퐈 / 개인적으로는 5년 뒤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10년 뒤에는 저희 대퐈마도 50대 중반에 접어드는데요^^;;, 그때는 은퇴한 후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헤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많은 건강한 중년들이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할 거예요. 미리 은퇴 후를 살아본 인생 선배가 되어 현실감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보람 될 것 같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