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마신 맥주병이 벽돌이 된다면? 하이네켄 WOBO

sodamasism2019-08-18 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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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퀴라소 섬 해변에는 버려진 맥주병들이 방파제처럼 쌓여있었다”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퀴라소(Curaçao)를 방문한 것은 네덜란드의 맥주왕 ‘알프레드 하이네켄(Alfred Heineken)’이었다. 버려진 빈 병들 사이에는 그들의 맥주 ‘하이네켄(Heineken)’도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하이네켄의 빈 병을 30회까지 재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졌지만, 이곳에서 한 번 마신 맥주병은 버려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설을 갖추는 것조차 사치였다. 알프레드 하이네켄은 퀴라소에는 집 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퀴라소를 나오며 그는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버려지는 맥주병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어떨까?”

맥주병이 벽돌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잠깐만 이거 델몬트 스타일인데? ⓒHeineken)
1960년대는 밀러, 버드와이저, 쿠어스 등 많은 맥주들이 병의 디자인을 바꾸던 시기다. 하지만 모두가 더욱 많은 판매를 위한 디자인을 생각했을 때, 하이네켄만은 건축자재가 될 디자인을 고려하게 된다. 알프레드 하이네켄은 건축가 존 하브라켄(John Habraken)과 함께 새로운 하이네켄 병을 디자인한다.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았다. 둥근 병의 모양을 직사각형으로 제작한다. 또한 병목 부분의 돌출 부분만큼 병의 바닥에 홈을 만들어 겹쳐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병 표면에는 홈을 만들어 시멘트를 넣어 쉽게 쌓을 수 있도록 제작하는 것이었다.

(WOBO, 벽돌로 쓸 수 있습니다 ⓒHeineken)
여러 프로토타입이 거친 뒤에 건축자재로 쓸 수 있는 하이네켄 병이 만들어졌다. 50cm와 35cm 두 가지 규격으로 나와 건축에 보다 도움이 될 수 있게 만들었다. ‘2차 사용을 위해 고안된 세계 최초의 병’ 하이네켄 월드 보틀(Heineken World Bottle), 일명 WOBO가 만들어진 것이다.

알프레드, 그들은
하이네켄으로 집을 짓지 않을 거예요
(하이네켄 박물관의 WOBO벽, ⓒFlickr Greezer.ch)
1963년, 하이네켄은 10만 개의 WOBO병을 생산한다. 적어도 100개의 작은 오두막을 지을 수 있는 양이었다. 알프레드 하이네켄은 자신의 정원에 WOBO로 만든 작은 집을 지었다. 이 유리벽돌은 겹쳐서 쌓기도 간편했고 시멘트를 두른 것으로도 충분한 벽이 만들어졌다. 퀴라소 해변에 버려져있던 맥주병 문제와 주택부족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WOBO는 빛을 보지 못했다. 오두막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맥주병이 필요했고(이 문제를 해결해줄 병을 모아줄 공동체도 없었다), 그들에게 하이네켄은 사치스러운 맥주였다. 무엇보다 퀴라소의 가난한 사람들은 집을 지을 줄 몰랐다.

반대로 기존 하이네켄을 즐기던 이들에게는 단지 유리가 두꺼워 무거워진 맥주병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무엇보다 마케팅부에서는 하이네켄이 가진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이 병으로 인해 훼손될까 우려를 했다. 결국 많은 반대를 견디지 못하고 WOBO는 상업적 출시를 하지 못했다.

10만개의 WOBO는 현재 대부분 사라지거나, 훼손된 상태다. 오직 알프레드 하이네켄의 정원에 있는 집과 암스테르담의 하이네켄 박물관에 전시된 하이네켄 WOBO 벽만이 남았다.

WOBO가 남긴
소중한 것들
(쓰레기는 그냥 쓰레기가 아니야 ⓒGarbage Housing, Heineken Collection Foundation)
10년이 지나 WOBO의 가치가 세상에 알려졌다. 도시학자 마틴 폴리(Martin Pawley)의 책 ‘가비지 하우싱(Garbage Housing)’이라는 책의 주요 사례로 하이네켄의 WOBO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계의 무분별한 자원(특히 병이나 캔과 같은 용기) 소비의 위험성과 함께 이를 재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 논쟁적인 책이 나온 이후 세상은 조금씩 변해간다. 몇몇 실험적인 단체들에 의해 각종 폐기물을 가지고 집을 짓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대한 개념들이 퍼지는 데에 일조를 했다. 소비자들도 변했다. 내가 운동화를 한 켤레 사면 가난한 이들에게도 한 켤레를 선물하는 ‘탐스(TOMS)’를 찾고. 대중들에게는 그 어떤 디자인보다 버려진 현수막으로 만든 ‘프라이탁(FREITAG)’이 고급스럽게 여겨진다.

(왼쪽 슈퍼볼 광고의 버드라이트 하우스, 오른쪽 맥주병으로 공사용 모레 만드는 DB맥주)
무려 1960년대의 일이다. ‘WOBO는 실패한, 단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아이디어였을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환원이나 업사이클링의 시대를 열어주는데 힘이 되었다. 때로는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도전은 그 자체로 다른 도전을 이끌어준다.

많은 맥주(를 비롯한 음료)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응원하며, 또 알프레드 하이네켄의 멋졌던 도전을 기억하며 맥주를 마셔본다.

참고문헌 :
- 1964 The story behind the WOBO, Heineken Collection Foundation
- An inside look at the “Heineken Experience”, Daniel Terdiman, CBSNEWS
- In The ’60s Heineken Tried To Solve The World’s Housing Problems With Beer Bottles, ALIZA KELLERMAN, Vinepair
- Heineken Wanted Beer Bottles To Be Bricks For People In Need, Lily Hay Newman, GIZMODO
- Heineken’s Lost Plan To Build Houses Out Of Beer Bottles, Mark Wilson, Fast Company
- When Heineken Bottles Were Square, K. Annabelle Smith, Smithsonian
- HEINEKEN WOBO: A Beer Bottle That Doubles as a Brick, Yuka Yoneda, Inhabit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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