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7 09:38

“맛깔스러운 대사 비결?… 찰떡처럼 꼭맞는 말 찾으려 애썼죠”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영화 ‘말모이’에서 까막눈 김판수(유해진)는 글을 배운 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생애 처음으로 읽고 감상에 젖는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평범한 대사도 생명력을 불어넣어 맛깔스럽게 살려 주는 배우.”
영화 ‘말모이’의 엄유나 감독은 배우 유해진을 이렇게 칭찬했다. 내년 1월 9일 개봉될 예정인 ‘말모이’는 영화 ‘택시운전사’ 각본을 썼던 엄 감독의 첫 연출 작품. 1940년대 경성이 배경으로 우리말 사용과 교육이 금지된 시절, ‘말모이’(우리말 사전 편찬 사업)를 했던 조선어학회를 그렸다. 유해진은 까막눈으로 살다가 조선어학회를 통해 글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김판수를 연기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김판수 캐릭터를 “기억에 큰 인상으로 남아있는 동네 아저씨를 모델로 했다”고 설명했다. “키는 165cm 정도에, 목이 굵고 땅땅한 체형이었죠. 항상 불만이 가득해 싸움을 붙이려 하고, 만날 침 뱉던 아저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유해진이 김판수를 이런 인물로 그린 건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성격의 소유자기 때문이다. 전과자인 그는 극장에서 일하다가 소매치기와 공모한 것이 발각돼 해고당한다. 중학생 아들의 밀린 월사금을 구하려 도둑질까지 일삼는 그가 감옥소 동기로 만난 조선어학회 조갑윤 선생(김홍파)의 도움으로 학회 사환으로 취직한다. “참 이상한 놈”인데, 글을 몰라도 말은 또 청산유수다.

“현장에서 대사에 쓸 ‘찰떡’같은 표현을 찾으려 많은 고민을 했어요. 예를 들어, 딸로 출연한 순이를 표현하자면 이렇게 생각해요. ‘솜사탕인가? 어유, 솜사탕은 너무 세련됐어. 그럼 인절미? 아, 콩고물은 어떨까?’ 하며 여러 단어 중 어울리는 말을 찾아가는 거죠.”

머리로든 몸으로든 납득이 될 때까지 ‘왜?’라고 묻는다는 그의 집요함은 연극 무대에서 시작했다고. 유해진은 “존경했던 선생님이 무대에 서기 전 ‘늘 스스로를 의심하라’고 했다”며 “내가 모르고 대충 하면 관객도 금방 눈치 채기 때문에 끝까지 질문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이번 작품에서도 그는 ‘유해진 표 애드리브’를 적절하게 선보인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다지를 캐면 황소를 사고, 노다지를 캐면 술을 사먹자’고 흥얼거리는 노래도 직접 작사, 작곡했단다.

“지문에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라고 나와 있었어요. 가만히 그 시절 분위기를 상상하니 ‘노다지’와 ‘소’가 떠올랐습니다. ‘재산이 있으니 소를 사고 남는 건 술을 사먹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유해진은 최근 한 시사회 현장에서도 윤계상과 다시 연기한 소감을 “우리는 드립 커피 같은 관계”라고 표현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하지만 막상 그는 “그냥 개그가 아니라 ‘아재 개그’라고 불러 좀 섭섭했다”며 웃었다. “신년 벽두를 아침이라 보면, 너무 자극적인 음식보다 ‘말모이’ 같은 순한 음식을 든든히 먹고 출발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추천사도 덧붙였다.

2019년 새로운 해를 맞는 심경은 어떨까. 그는 “세월이 너무 빨라 삐쳤다.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라진다는데 뭔가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우주의 질서가 바뀐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도 열심히 살면 ‘아유∼, 오늘 하루 너무 길지 않았니?’라고들 하잖아요? 시간을 천천히 가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계속 열심히 살겠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