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내 말 들려요? 들리면 일어나 봐요….”
5일 오전 경기 고양시의 한 장례식장. 지하철3호선 백석역 온수배관 파열사고로 4일 사망한 송모 씨(68)의 영정 앞에서 둘째 딸 윤아(가명·28) 씨가 엎드려 오열했다. 내년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윤아 씨의 어깨를 감쌌다.
송 씨는 이날 윤아 씨의 결혼 일정을 상의하기 위해 딸·예비사위와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폭발 지점 인근을 지나던 송 씨는 갑자기 땅에서 수증기가 올라오자 놀라서 차를 세웠다. 그 순간 배관이 터지면서 고압의 물줄기가 차를 덮쳤다. 차량 앞 유리창이 깨졌고, 섭씨 100도에 가까운 뜨거운 물이 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송 씨는 황급히 뒷좌석으로 몸을 옮겼지만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채 전신화상을 입고 목숨을 잃은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구두 수선공인 송 씨는 젊었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5 ㎡(약 1.5평) 남짓의 구두 수선소에서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며 두 딸을 키웠다고 한다.

5일 오후 기자가 사고 현장에서 4km 가량 떨어진 수선소를 찾아갔을 때 문은 철제 셔터로 굳게 닫혀있었다. 수선소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 씨(45)는 “송 씨는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주말도 없이 항상 성실하게 일했다. 선하고 살가운 분이었다”고 말했다. 인근 카페 아르바이트생 차모 씨(22·여)는 “손재주가 좋은 분이라 이 동네에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구두 수선을 송 씨에게 맡겼다”고 전했다.
송 씨는 오래 전 아내와 이혼했고, 두 딸과도 따로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 김모 씨(59)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일해 혼자서 두 딸을 키워낸 ‘딸바보’ 아빠였다”며 “내년 4월에 둘째 딸이 결혼한다며 자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윤아 씨는 “홀로 계신 아버지가 외로우실까 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만났다”며 “식사를 마치고 댁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사고를 당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울먹였다. 첫째 사위 박모 씨(49)는 “이번 주말에 아내와 함께 장인어른을 찾아 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경찰에서 연락을 받아 너무 놀랐다”며 황망해했다.

경찰은 송 씨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6일 부검을 실시할 방침이다. 유족들은 반대하고 있지만 유족 동의를 받지 않아도 부검을 할 수 있다. 사위 박 씨는 “사고 이외에는 다른 사인이 있을 수 없는데 왜 굳이 부검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은지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