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세자가 카쇼기 납치 지시… 美정보당국 도청에 걸려”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美언론 “사우디 관료 대화 도청…
실제 살해하려 했는지는 불분명
”트럼프 “사실의 윤곽 드러나”
美의회 “원인제공 국가 제재해야”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납치돼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 출신 칼럼니스트 자말 카쇼기(위쪽 사진). 미국 정보당국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아래쪽 사진)가 카쇼기의 납치를 지시한 정황이 담긴 사우디 관료들의 대화를 도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 출처 카쇼기 인스타그램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 내에서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 출신의 유명 언론인 자말 카쇼기(59)를 사우디 왕실이 계획적으로 납치하려 한 정황이 담긴 사우디 관료들의 대화를 미국 정보 당국이 도청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이 10월 11일 보도했다.

사우디 왕실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WP에 게재해 온 카쇼기는 혼인신고 서류를 받으려고 10월 2일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을 찾아간 뒤 실종됐다. 터키 정부가 10월 6일 “카쇼기가 실종된 날 터키에 입국한 무장 남성 15명이 그를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며 증거 사진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사우디 정부는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반박해 왔다.

WP는 “미 정보 당국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카쇼기를 사우디로 납치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도청 내용은 이번 사건에 사우디 왕실이 개입했다는 증거”라고 전했다. 미 정보 당국이 언제 이 도청 내용을 확인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카쇼기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우디 고위 관료들이 4개월 전부터 전화를 걸어와 “고국으로 돌아오면 신변의 안전과 상류 계급의 일거리를 제공하겠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 카레드 사푸리 씨는 “그는 자신을 해치지 않겠다는 사우디 관료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CNN방송은 미 정보 당국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처음부터 카쇼기의 목숨을 노린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며 “영사관 내에서 그를 납치하려던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원인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우디의 권력 실세인) 살만 왕세자가 직접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시를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건이 왕세자의 승인 없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미 정가에서는 카쇼기의 껄끄러운 칼럼이 없어지길 원했던 사우디 왕실이 그의 실종으로 인해 불어 닥칠 역풍을 계산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10월 9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권법에 의거해 카쇼기의 실종에 원인을 제공한 국가에 대한 제재 방안을 백악관이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유엔과 영국 등 국제사회도 사우디에 대한 압박에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카쇼기의 실종 원인을 제공했는지 아직 불분명하지만 어느 정도 사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며 “언론인이든 누구에게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다.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사우디 정부가 카쇼기의 실종과 죽음에 연관된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동안 우호적이었던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전혀 다른 관계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