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평가받고 홈쇼핑서도 팔수있는데… 병원선 왜 못 쓰죠?”

규제문턱 못넘는 바이오의료기기
바이오산업 옥죄는 ‘신의료기술평가’


《새 성장동력인 바이오산업이 겹겹이 쌓인 규제에 포위돼 있다. 특히 새로운 의료기술을 평가하기 위해 2007년 도입된 ‘신의료기술평가’는 기업 발목을 잡는 대표 규제로 꼽히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안정성을 평가받은 뒤 다시 유사한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3∼5년 안에 규제 혁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글로벌 바이오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점령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2월 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브레인 스티뮬레이션(Brain Stimulation)’은 우울증 치료기기 ‘마인드(MINDD)’에 대한 논문을 실었다. 마인드는 KAIST 석·박사 출신들이 모여 만든 스타트업 ‘와이브레인’이 2016년 개발한 제품이다. 이마에 기기를 두르면 미세전류가 뇌를 자극해 항우울제와 유사한 효과를 낸다. 당시 논문은 마인드의 안전성에 관한 것으로 와이브레인이 하버드대와 함께 작성했다. 이기원 와이브레인 대표(34)는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다”고 했다.

와이브레인은 마인드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까지 미래에셋벤처투자 등으로부터 162억 원을 투자받았다. 바이오 스타트업 중 최대 투자 유치다. 하지만 이 제품은 개발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병원에서 쓰이지 못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의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외국선 호평, 한국선 규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도 통과해서 홈쇼핑에선 팔아도 되는 걸 정작 병원에선 못 쓴다는 게 말이 됩니까.”

9월 2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마인드는 지난해 3월 식약처 허가를 획득했다. 이 덕분에 홈쇼핑이나 온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 이 대표의 목표는 병원 판매다. 환자 처방용으로 쓰여야 판로에 날개를 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 신의료기술평가에 도전했다가 탈락했다. 이 문턱을 넘지 못하면 병원에서 치료용으로 쓰일 수 없다. 그 사이 유럽 의료기기 국제규격(CE MDD) 인증을 받는 등 외국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대표는 “탈락한 이유라도 알아야 할 텐데 그마저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의료기술평가 탈락 사유는 대부분 공개되지 않는다.

와이브레인은 올 6월 두 번째 신청을 했다. 결과는 내년 2월에 나온다. 그때 통과가 되더라도 제품 연구 단계에서부턴 6년, 개발 완료 단계에서부터는 2년 4개월이 지난 뒤다. 와이브레인이 허가 절차에서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마인드 판매 계약을 맺었던 대리점 중 일부는 이미 계약을 취소했다.

현재 국내에서 의료기기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4단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식약처 허가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이미 있는 기술인지를 따진다. 기존 기술이 아니면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심평원이 건강보험 급여를 산정한다.

이 중 최대 난관이 신의료기술평가다. 보건복지부가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2007년 도입했다. 바이오업계는 이전엔 심평원으로 일원화됐던 절차가 이중 규제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평가 기간과 방식도 문제다. 의사 변호사 등 20명으로 구성된 평가위가 280일간 임상논문을 분석해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이 대표는 “새 기술을 평가하는데 기존 논문을 기초로 들여다보는 구조”라고 했다. 심사위원들이 신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면 통과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2016년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한 제품은 82건이다. 그해 심사 과정에서 탈락한 기기도 61개나 된다. 10건 중 4건은 탈락한다는 뜻이다.
개선안 발표에도 기업들 한숨
정부도 문제점을 인지하고 7월 개선 방안을 내놨다. 인체 유해성 우려가 적은 신의료기술은 사전 규제 방식에서 ‘사전 허용-사후 규제’ 형태로 바꿨다. 이 조치로 체외진단검사 분야의 신의료기술평가는 내년부터 사후 평가로 전환된다. 하지만 나머지 분야는 아직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대표는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신의료기술평가를 포기한 곳도 많다. ‘뷰노메드 본에이지’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스타트업 뷰노는 5월 인공지능(AI) 관련 의료기기 업계 최초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뷰노메드 본에이지는 손뼈 엑스레이 영상을 AI가 분석해 의사의 판독을 돕는다.

그러나 심평원은 ‘기존 기술’로 평가했다. 신의료기술평가 단계에 가보지도 못했다. 김현준 뷰노 전략총괄이사(40)는 “식약처가 AI 기술 관련 가이드라인이 없어 이를 만드는 걸 2년간 기다렸다가 허가를 받았는데 이제는 기존 기술로 판정돼 국내에선 판로를 찾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바이오업계는 글로벌 수준의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의료기기가 시장에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사전인증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AI가 접목된 의료기술을 안착시키기 위해 시판 후 성능 재평가 방법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신형두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한국은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까지 사전 규제하며 산업 발전을 막고 있다”고 했다.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기술 규제를 기업 측면에서만 평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후 재평가 시스템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염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