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음대에 부는 음악혁명… “악기-노래 못하는 영재도 환영”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올해부터 ‘전자 디지털 악기’ 연주자 신입생 선발
버클리음대 학생들이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에서 현지인을 위해 공연하고 있다. 음악인의 사회적 참여를 실천하는, 이 대학 ‘글로벌 재즈 인스티튜트’ 학생들이다. 성평등 문제를 다루는 ‘재즈와 젠더 정의 인스티튜트’도 이번에 설립했다. 버클리음대 홈페이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버클리음대는 ‘대중음악계의 하버드’로 통한다.

게리 버턴, 존 스코필드 같은 재즈 거장들부터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 빌보드 싱글차트 최장기 등재 기록을 세운 ‘이매진 드래건스’까지 스타 졸업생들의 면면이 다채롭고 방대하다. 최근에는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 37억 건을 기록한 ‘See You Again’의 신세대 팝스타 찰리 푸스가 이곳 졸업생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1945년 설립 이래 지금껏 120명의 버클리음대 동문이 총 283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휩쓸었다. 케이팝과도 연이 깊다. 1979년 고 정성조 전 KBS 관현악단장이 첫 한국인 입학생. 이후 정원영, 김광민, 김동률, 윤상, 조PD가 이곳을 졸업했고 말로, 손성제, 강이채 등 동문도 재즈와 가요계에서 활약 중이다. 싸이(중퇴·이후 명예졸업), 헨리(휴학)도 이곳 출신. 동방신기부터 레드벨벳까지 케이팝 히트곡을 다수 쓴 켄지(김연정) 역시 버클리음대를 나왔다.

버클리음대를 9월 6일 찾았다. 혁명의 바람이 분다고 해서다. 1945년 개교 이래 엄격한 실기 고사로 이름난 이 학교에 이번 학기부터 악기 연주나 노래를 전혀 못 하는 영재도 입학이 가능하다. ‘전자 디지털 악기(Electronic Digital Instruments·EDI)’ 연주자를 입학생에 포함시킨 것. 그간 버클리에 들어가려면 기타, 관악기, 피아노, 목소리 등 8개 악기 가운데 하나를 능숙하게 다뤄야 했다. 그러나 이젠 로직, 에이블턴 라이브 등 음악 소프트웨어만 잘 다뤄도 된다.

이 학교 로저 브라운 총장(사진)을 만났다. 총장실 벽면에는 버클리음대 최연소 교수 기록(19세)을 가진 재즈 기타 거장 팻 메시니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브라운 총장은 “구전과 감각으로 익히던 재즈를 1940년대에 최초로 교육과정으로 체계화한 학교가 버클리음대다. 디지털 악기 과정 도입도 당연한 수순”이라며 웃었다.

대중음악계 최고 상아탑으로 70년 이상 군림한 버클리의 변화는 통계에도 나타난다. 이곳 졸업생이 근래 가장 많이 취업하는 기업은 맥북과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이다. “저희 졸업생 최다 취업 기업 20위 안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시스코, 오라클이 있습니다. 연주자와 작곡가로 시작한 이들이 정보기술(IT) 기업에 들어가고 있어요.”(브라운 총장)

버클리음대가 올해 최초로 EDI 신입생을 받기까지는 수년간 진통도 있었다. 실제 악기의 고난도 연주에 천착해 온 교수들과 혁신주의자들 사이에 전공 개설 여부부터 오디션 방식까지 이견이 컸기 때문이다. 첫 디지털 오디션에서 지원자들은 소프트웨어로 드럼, 베이스기타에 맞춰 즉흥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

브라운 총장은 “1940년대에 ‘재즈는 대학에서 가르칠 과목이 아니다’라는 견해가 많았다”며 “디지털 음악은 유튜브로 독학하면 그뿐이라는 오해 역시 안타깝다. 체계적 교육을 통하면 더 창의적인 단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버클리음대는 인근의 매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대와 공동 학위 과정도 개설했다. “앞으로는 가상현실을 포함한 IT 부문이 졸업생들의 주 활동 분야가 될 것입니다. 유튜브 비디오 제작 학생 대항전도 도입했죠.” 버클리음대는 거장 연주자 교수들에게서 배우던 전통을 기반으로, 찰리 푸스 같은 유튜브 스타 학생들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다.
 
보스턴=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