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코앞 애견 운동장… 개들은 천국, 주민엔 소음지옥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주택가 반려견시설물 곳곳 갈등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공간입니다. 개가 짖지 않도록 해 주세요!”

일요일인 9월 2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한 주민이 소형 확성기를 들고 바깥으로 소리를 쳤다. 아파트 울타리 너머 ‘애견 동반 카페’에 모인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자 소음을 참다못한 주민 A 씨(35·여)가 카페를 향해 항의를 한 것.

이용객들이 자유롭게 애견을 데려 올 수 있는 이 카페에는 495m³(약 150평) 규모의 ‘애견 운동장’이 설치돼 있다. 이날 오후에는 개 10여 마리가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힘차게 짖으며 달리고 있었다. 이 카페는 애견 운동장이 있어서 개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이 났고, 수도권 각지에서 애견인들이 몰려든다.

○ 주민들 “개 짖는 소리에 주말은 지옥” 
2일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 앞 애견 동반 카페 운동장에 강아지와 견주들이 모여 있다(큰 사진). 손님이 몰리면서 개 짖는 소리가 커지자 한 주민이 베란다 너머로 카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남양주=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애견 인구가 늘면서 도심에 애견 카페나 애견 호텔 등 애견 관련 시설물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소음과 악취 때문에 인근 주민과 마찰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확성기 방송’을 했던 A 씨가 사는 아파트의 동과 해당 애견 카페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15m에 불과하다. A 씨는 “4개월 전 아파트 단지 앞에 애견 카페가 생긴 이후 올해 네 살인 딸이 자다가 개 짖는 소리에 놀라서 깨서 울곤 한다. 집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일부러 외출도 한다”고 토로했다.

같은 동 주민 김모 씨(41·여)는 “고등학생 아들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더운 날도 방 창문을 닫아 둔다. 석 달 전에 이사를 왔는데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옆 동 주민 남모 씨(41)도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 층간소음만큼 심한 소음에 시달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특히 주말에는 집이 휴식처가 아니라 지옥이 된다”고 하소연했다. 애견과 함께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멀리에서도 찾아오기 때문에 평소보다 소음이 더 심하다. 주민들은 지난달 말 주민 공청회와 입주자 대표회의를 열고 카페 소음에 대한 항의 현수막을 걸기로 결의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애견 시설과 주민 간의 갈등은 종종 빚어진다.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단지는 330m² 규모의 야외 운동장을 갖춘 애견 카페와 인접해 있다. 아파트 가장 가까운 동과 카페의 직선거리는 50m 정도다. 주민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아 카페 측은 내부에 ‘개가 짖지 않게 말려 주세요’라는 내용의 안내판을 설치했다. 충북 청주시에서는 5월 주택가에 애견 호텔이 들어서자 주민들이 “소음과 악취가 심각하다”며 반발했다.

○ 카페 측 “합법적 영업”…법 미비가 갈등 원인 제공

그렇다고 카페 측만 탓하기도 어렵다. 카페 업주 김모 씨(47)는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것인데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과 대화해 방음 시설 설치를 논의할 의향은 있지만 가게 이전이나 야외 운동장 철거는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들로서도 뾰족한 해법이 없다. 남양주시의 해당 읍사무소 관계자는 “애견 카페 관련 민원이 많지만 카페를 규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며 난감해했다.

동물보호법에는 애견 호텔, 애견 미용실 등 ‘동물 관련 사업장’의 내부 시설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입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애견 카페는 동물 관련 사업장이 아닌 식품접객업소로 분류돼 아예 동물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더욱이 애견 놀이터나 운동장 등 외부에 노출된 시설은 사업체를 등록해야 하는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아무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 동물 울음소리는 소음진동관리법상 소음에 해당하지 않아 지자체가 관리하기 어렵다.

청주시 관계자는 “관련 법규가 없어 갈등 중재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현재로서는 업주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양해를 구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남양주=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