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은 ‘거대한 미로’?…1, 2, 3번 출구가 2개씩 있어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2018-08-09 15:30
거대한 미로가 된 ‘서울의 관문’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2층 대합실. 일본인 관광객 가노 도요코 씨(23·여)가 두리번거리며 길을 살피고 있었다. 이날 입국한 그는 서울역광장이 있는 1번 출구와 서부역으로 불리는 서쪽 15번 출구를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기 위해서였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설치한 표지판에는 대합실에서 4호선을 타려면 1번이나 15번 출구로 가도록 적혀 있었다. 그곳에서 1번 출구로 가려면 200m만 걸으면 되지만 15번 출구로 나가려면 1km가량을 돌아가야 한다. 불필요한 중복 안내다. 가노 씨는 “안내 내용이 복잡하다. 1호선, 4호선, 공항철도를 상징하는 노선 색깔이 모두 파란색 계통이라 구별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서울역은 ‘한국의 미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거대한 미로가 된 서울역에서 많은 외국인이 길을 잃고 있다. 운영기관들의 주먹구구식 운영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 1호선 서울역 지하 1층 개찰구 앞에 고속철도(KTX) 서울역 방향을 안내하는 표시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되어 있다. 왼쪽을 가리키는 표지 2개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오른쪽을 가리키는 것은 서울교통공사가 설치한 것이다. 코레일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가깝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서울역은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 공항철도가 나눠 관리한다. 시설과 안내표지도 마찬가지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하나의 역이지만 내부적으로는 3개의 다른 역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역에는 1, 2, 3번 출구가 2개씩 있다. 고속철도(KTX) 등이 오가는 코레일의 지상 서울역, 지하철이 있는 서울교통공사의 출구 번호가 중복 지정됐기 때문이다. 한 예로 ‘서울역 3번 출구’가 코레일 것은 서부역에, 서울교통공사 것은 그곳에서 직선으로 480m 떨어진 세종대로에 따로 있다. 이를 별도로 설명한 안내판이 없기 때문에 코레일 서울역 2층 대합실에서 ‘지하철 3번 출구’를 가려는 사람이 ‘3’자만 보고 따라가다 ‘코레일 3번 출구’로 가면 엉뚱한 곳으로 나가게 된다.
안내 표기도 중구난방이다. 숭례문(남대문)이 코레일 2번 출구에는 ‘숭례문(Sungnyemum)’, 지하철 3번과 6번 출구에는 ‘남대문(Namdaemun)’이라고 영문으로 적혀 있다. 공항철도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지하 환승통로에서는 코레일과 공항철도가 9-1번 출구 방향을 서로 정반대로 표기했다. 코레일이 표기한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만 공항철도는 3년이 넘도록 고치지 않고 있다. 지하철 1호선 개찰구를 나와서 KTX 승강장으로 가는 길에는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가 각각 설치한 표지판이 나오는데 방향은 반대로 돼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상호 협의가 필요할 경우 기관 간에 협의를 하지만 안내 체계는 기관별 기준에 따른다”고 밝혔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역 2층 대합실에 있는 안내표지판. 지하철 1·4호선으로 환승하려면 2번 출구로 나가는 것(빨간색 동그라미)이 훨씬 가깝지만, 지하철과 반대편에 있는 3번 출구(노란색 동그라미)로 나가는 것도 안내해 이용자들의 혼란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안내표지 디자인도 효율적이지 않다. 코레일은 안내표지 배경으로 파란색 ‘코레일 블루’를 쓴다. 지하철 1·4호선, 공항철도 노선 색도 파란색 계열로 외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인도 눈이 나쁘면 한눈에 구별하기 어렵다. 또 서울교통공사 안내표지는 흰색 바탕(2000년 양식)과 검은색 바탕(2012년 양식)이 섞여 있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길을 헤매던 영국인 에냐 윌슨 씨(19·여)는 “안내표지가 너무 많고 생긴 게 다 달라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승객 불편을 막기 위해 안내표지의 글씨는 바탕색과 비슷한 색을 쓰는 걸 피하고 있지만 지하철 노선 색은 바꿀 수 없다”며 “안내 표기 차이, 출구번호 혼선 등 승객의 불편을 줄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운영기관들이 협의해 안내 디자인과 설치 기준을 맞추고 있다. 성별, 국적,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고쳐 가는 추세다. 반면 국내는 행정안전부(공공서비스), 국토교통부(시설), 문화체육관광부(디자인) 등 담당 주무 부처조차 제각각이다. 최성호 한양사이버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일관되지 않은 안내 체계는 비상 상황에서 승객에게 더 큰 혼란과 피해를 줄 수 있다”며 “노선 수가 더 늘어날 것을 대비해서라도 각 기관이 일관성 있는 안내 디자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김민찬 인턴기자 서울대 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