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감시대상 ‘독립운동가 인물카드’ 문화재 된다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2018-08-11 09:30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기도경찰부 등이 작성한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윤봉길 이봉창 안창호 의사(위 사진 왼쪽부터), 동아일보 사장과 주필을 지낸 송진우(아래 사진) 등 독립운동가 4858명이 일제가 만든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올랐다. 문화재청 제공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서대문형무소에는 유관순과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약 9만 명이 수감돼 고초를 겪었다. 일제는 이들의 수형 기간이 끝나더라도 ‘요시찰 인물’로 분류하며 끝까지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이처럼 일제가 항일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려 작성했던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이 카드에는 안창호 유관순 윤봉길 이봉창 한용운 등 조선총독부 감시 대상이던 4858명의 사진과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카드에서 죄명이 확인되는 4630명 가운데 87.7%인 4062명이 치안유지법, 보안법, 출판법 등을 위반한 이른바 ‘사상범’이었다.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당시 경성을 관할하던 경기도경찰부 등 일제 경찰과 서대문형무소 등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세로 15×10cm 크기로 당시 경찰관서에서 휴대용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광복 뒤엔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관리해오다 1980년대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보관해왔다.

이 카드를 검토한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사진의 보존 원판 번호를 볼 때 카드로 작성된 인물은 7만5000명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와 독립운동 유공자 포상심사 등에서 매우 중요하게 활용할 수 있는 원천 자료”라고 설명했다.

카드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얼굴 사진이 다수 부착돼 있다. 안창호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 의거 뒤 일제 경찰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시절의 사진이 있다. 1920년대 촬영한 말끔한 신사의 모습이 아니라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심한 고문을 당한 독립투사의 현실이 그대로 묻어난다.

항일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초기 활동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단원이던 정이소의 인물카드에는 김원봉을 포함한 의열단의 단체 사진이 수록돼 있다. 1920년 3월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역(치외법권지역)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며, 초기 의열단의 유일한 사진으로 전해진다.

당시 항일 보도로 일제의 탄압에 시달린 동아일보 기자와 경영진도 대거 등장한다. 주필과 사장 등을 역임한 송진우(1890∼1945)와 편집국장을 지낸 홍명희(1888∼1968)를 비롯해 1919년 3·1운동 당시 기독교 대표이자 동아일보 제4대 사장을 지낸 남강 이승훈(1864∼1930),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동아일보 통신원을 지낸 여운형(1886∼1947) 등 10여 명에 이른다.

카드에는 15세 학생부터 72세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들이 수록돼 있다. 직업 역시 학생, 언론인, 마차꾼, 농부 등으로 전 국민이 일제의 감시에 놓여 있었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은 “인물카드에 등장하는 직업만 70여 개로, 독립운동이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등록 예고 기간 중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문화재로 최종 등록할 예정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