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서 집은 꿈도 못 꿔”…캠핑카 사는 사람들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실리콘밸리에서 돈을 모으려면 집은 꿈도 못 꿉니다. 모든 게 다 구글 때문입니다.”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의 스탠퍼드대 앞 엘 카미노 리얼 거리에서 만난 잭 브라델 씨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3개월 전 일자리를 찾아 샌디에이고에서 실리콘밸리로 온 그는 일이 끝나면 길가에 주차된 녹색 중소형 자동차 안에 눕는다. 다리를 길게 뻗을 수 없어 밤새 쪽잠을 자는 게 일상이다. 차 트렁크는 옷가지, 세면도구, 이불 등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다. 간단한 샤워와 화장실 사용은 스탠포드대 체육관에서 일주일에 15달러씩 내고 해결한다.
이 거리에는 브라델 씨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아간다. 그의 차 앞뒤로 캠핑카 16대가 길 한쪽을 점령하고 있었다. 캠핑카 앞유리에 뽀얗게 쌓인 먼지와 유리에 부착된 ‘견인주의’ 스티커를 통해 이 차량들이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매일 스탠포드대 앞에서 버스를 탄다는 마리오 씨는 이런 풍경이 익숙하다는 듯 “4, 5년 전부터 캠핑카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화 도중 견인차가 길가에 있던 캠핑카 중 하나를 실어가려다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마리오 씨는 “장기간 주차하거나 불법 개조한 캠핑카들은 견인 조치를 당한다”고 설명했다.

주택이 이난 길거리 캠핑카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부동산 업체 질로우에 따르면 5월 기준으로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지역의 주택 중간값은 126만 5300달러(약 14억 1966만 원)로 미 전역에서 가장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이 비싸다고 여겨졌던 로스앤젤레스(64만 4900달러)와 뉴욕(42만 8200달러)을 크게 앞지른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19년째 살고 있는 라거 샌더 씨는 “지금 살고 있는 방 하나짜리 월세가 2000달러 정도다. 집 대신 700달러짜리 중고 캠핑카에서 사는 게 더 이득인 셈”이라고 말했다.

뛰는 집값과 몰리는 사람들, 그로 인한 교통 체증이 심각해질수록 실리콘밸리에 염증을 느끼는 주민도 늘어나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 의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지역을 떠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주민 1000명 중 46%가 ‘그렇다’고 했다. 떠나고 싶다는 대답은 2016년 34%, 2017년 42%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의 집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이들이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2010~2016년 기간 일자리가 29% 증가했다. 그러나 주택 공급은 4%밖에 늘지 않았다. 도로에 차량이 늘어나면서 평균 통근시간도 18.9%나 늘었다. 실리콘밸리 부동산 업자 라피엘 인시그나레스 씨는 “현재 실리콘밸리 지역에 나온 주택 매물은 43채 밖에 없다. 그러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집을 사려고 한다”며 “집값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다보니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IT 대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기업을 따라 온 고소득자들이 기존에 있던 지역 주민들을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주민들이 구글 애플 등 IT 기업의 통근버스를 막아서거나 창문에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다. 통근버스들은 봉변을 피하기 위해 기업 로고를 지우고 색상으로 회사를 구분하고 있다. 라거 씨는 “지역 경제를 살린 것은 IT 기업이지만 주민들의 삶을 망친 것도 그들”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황규락 기자 rock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