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저항한 아시아계 美의사 ‘해고 통보’ 받아

이예리 기자
에디터 이예리 기자|
유진 구 씨 트위터(@eugenegu)
미국 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한 쪽 무릎을 꿇은 사진을 SNS에 올리는 등 사회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아시아계 의사가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밴더빌트대학 의료센터(Vanderbilt University Medical Center)에서 근무하는 유진 구(Eugene Gu)씨는 최근 개인 SNS에 병원 복도로 추정되는 곳에서 의사가운을 입고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찍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사진 속 구 씨가 취한 포즈는 흑인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을 따라한 것입니다. 캐퍼닉은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과 백인 우월주의에 저항하는 의미로 2016년 8월 경기 전 애국가 연주 때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한 쪽 무릎을 꿇었습니다. 캐퍼닉과 뜻을 함께하는 선수들도 이 자세를 따라 했습니다. 이 시위는 ‘의미 있는 저항’이라는 반응과 ‘스포츠에 정치색을 끌어들이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반응을 함께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됐습니다.
온라인 매체 넥스트샤크(Nextshark)에 따르면 구 씨는 2017년 병원 주차구역에서 인종차별적 모욕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목에 걸고 있던 의사 신분증 줄로 목을 조르며 구 씨를 공격하던 가해자는 끝까지 따라와 환자 명단까지 빼앗아갔다고 합니다.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구 씨는 차별주의자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2017년 9월24일 캐퍼닉과 같은 자세로 사진을 찍어 올렸습니다. 이 사진은 구 씨 본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격려했습니다.

평소 정치·사회적 발언에 적극적인 구 씨는 트위터에 트럼프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가 트럼프 대통령 본인으로부터 차단당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는 대통령 트위터 계정은 단순한 개인계정이 아니라 공적 계정으로서의 의미가 크며, 한 나라의 대표가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을 차단하는 건 부당하다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습니다.

구 씨는 자신을 차단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사진=유진 구 씨 트위터(@eugenegu)
그러나 세상에는 구 씨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사가 정치적 문제를 직장에까지 끌고 들어왔다”, “의사라면 정치적 이야기는 그만두고 진료나 잘 하라”며 사이버불링(온라인에서 특정 개인을 괴롭히는 행동)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구 씨는 몇 달 내내 악플에 시달렸습니다.

풍파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직장인 밴더빌트대학 의료센터는 “환자들과 외부인사들로부터 항의가 많이 들어왔다. 개인의 정치적·사상적 자유는 존중하지만 직장에 정치적 이슈를 끌어들이는 것은 의사로서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구 씨를 해고했습니다.

구 씨는 “내가 병원 울타리 안에서 겪은 인종차별 피해를 공론화하자 보복을 당한 것”이라 주장하며 “나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인종차별에 맞섰을 뿐이다. 해고 통보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비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