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위험성 알고 있던 스탈린, 그래도 침공계획 믿지 않았던 까닭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1941년 6월 21일 밤. 독일 동부전선 장병들은 공격 준비를 마쳤다. 장병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소련군은 병력도 화력도 열세였다. 훈련 수준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한번 걷어차면 소련의 방어벽은 썩은 문짝처럼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1940년부터 소련 정보원들은 독일의 침공 계획을 알리는 정보를 무수히 타전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믿지 않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책임자를 신경질적으로 해임했다. 지금은 세계 역사를 바꾼 스파이로 평가받고 있는 리하르트 조르게도 침공 한 달 전에 정보를 제공하자 “일본에서 놀아나고 있는 바람둥이 자식이”라고 욕설까지 퍼부었다.

스탈린도 독일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독일과의 전쟁이 아직 불안한 소비에트 체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혁명의 완성이 중요했기에 전쟁을 두려워했다. 스탈린은 독일에서는 이미 휴지가 된 독소불가침 조약을 철석같이 붙들었다. 1940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세계대전을 공포하는 것이었지만 스탈린은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방자한 행동을 방치하고 있다고 책임을 영국과 프랑스에 돌렸다. 개인이든 국가든 상황이 나쁠 때 전형적으로 벌이는 행동이 남 탓이다.

스탈린. 자료사진
전쟁 직전 스탈린이 내린 유일한 조치는 어떤 경우에도 독일을 자극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명령을 거부하고 강경 대응으로 나간 사령관에겐 체포 명령을 내렸다. 헌병이 찾아왔을 때는 이미 침공이 시작돼 포성과 총격이 한창이었다. 미쿠셰프 장군은 헌병에게 “잠시 기다려 봐. 곧 명령이 바뀔걸세”라고 말했다. 그 덕분에 미쿠셰프 부대는 막강 전력의 독일군을 맞아 잘 버텼지만 다른 전선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독일엔 소련의 석유와 전략자원이 반드시 필요했다. 상대에게 전쟁을 일으켜야만 하는 이유와 힘이 있으면 평화조약은 무용지물이다. 둘 중 하나가 없을 때만 조약은 유효하다. 조약은 현실의 결과이자 표현일 뿐이지 현실을 창조하고 구속하지 못한다. 평화조약, 종전선언 다 좋다. 그러나 이런 점은 알고 했으면 좋겠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