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을 잃고 ‘사탕’에 집착한 연산군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2018-06-13 11:30
조선시대에는 사탕을 사당(砂糖)이라고 했다. 세종실록에는 ‘감자(甘蔗·사탕수수)는 맛이 달고 좋아서 생으로 먹으면 기갈(飢渴·배고픔과 목마름)을 해소하고 삶으면 사당(沙糖)이 되는데, 유구국(오키나와)은 강남(중국)에서 이를 얻어 많이 심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사당은 너무 귀한 음식이었다. 세종의 왕비였던 소헌왕후조차 끝내 먹어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문종실록에는 ‘소헌왕후가 병환이 나 사당을 맛보려 했는데, 후일에 어떤 사람이 이를 올리는 이가 있으니, 아들 문종이 이를 보시고는 눈물을 흘렸다’라고 쓰여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음식이 당긴다는 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상식이다. 어머니를 어린시절 잃은 탓일까. 연산군은 유달리 달달한 맛에 집착했다. 그는 “사당, 각양의 감리(甘梨) 등의 물건을 성절사(聖節使)에게 (중국에서) 사가지고 오게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중종실록에도 연산군의 단 음식 사랑이 그대로 드러난다. 우부승지 이우는 ‘사당·용안육·여지는 폐주(연산군)가 좋아하던 물품이어서 지금껏 수입했지만, 이후로는 이같이 먼 지방에서 온 색다른 물품은 수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간청했다.

‘왕은 성인의 인격을 닦아야 한다’는 뜻의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왕의 가장 큰 실천 덕목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엔 연산군의 이 같은 단맛 사랑은 패륜무도(悖倫無道)로 인식됐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음식에서 무엇이 천리(天理)이고 무엇이 인욕(人慾)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음식은 천리이지만 좋은 맛을 찾는 것은 인욕’이라고 답한다.

스코틀랜드 정신과 의사인 로널드 랭은 ‘광기는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돌파구’라고 분석한다. 연산군의 광기는 어머니(제헌왕후 윤씨)의 폐비와 죽음, 그리고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성종)와 관료들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다. 애착이론을 창시한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는 ‘신생아는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도록 진화했으며, 그래서 어머니와 아이를 강제로 떼어놓으면 아이는 극도의 불안감 및 공포감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아버지에 대한 연산군의 적개심은 폭정의 기폭제가 됐다. 연산군이 세자였던 시절, 사슴 한 마리가 달려들어 그의 옷과 손등을 핥아댔다. 사슴이 자신의 옷을 더럽힌 것에 화가 난 연산군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사슴을 발길로 걷어찼다. 이 광경을 지켜본 성종은 화가 나 세자를 크게 꾸짖었다. 성종이 죽고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가장 먼저 그 사슴부터 활로 쏴 죽여 버렸다.

이후 계속된 연산군의 광기와 폭정은 혹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분명한 사실은 연산군이 그에게 가해진 천형(天刑) 같은 스트레스를 단맛 가득한 음식으로 달랬다는 점이다. 승정원일기는 사당을 ‘인삼과 함께 복용하여 비위를 편안하게 하고 기력을 올리는 식품’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많이 먹으면 살이 빠지고 이가 썩으며 몸이 무겁고 걷기 힘들어진다.’ 과유불급과 균형 잡힌 식단은 예나 지금이나 건강의 키포인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