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 최선희도 수행… 北美회담 디테일까지 中과 논의한 듯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3월 집권 7년 만에 북한 땅을 벗어나 중국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0여 일 만에 다시 중국에 간 것은 그만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할 급박한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일 비핵화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김정은과 시 주석 모두 전략적 소통에 나설 시점이라고 절감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시 주석 입장에선 평화협정 체결 등 북-미 회담에서 논의될 만한 의제들이 ‘중국 역할론’과 맞닿아 있는 만큼 김정은과 세밀한 사전조율 작업을 마쳐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김정은 “단계적 동시적 조치하라” 재확인
 
해변 산책하는 김정은-시진핑 5월 8일(현지 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방추이섬 해변을 함께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다롄=신화 뉴시스  
김정은의 이번 방중에는 리수용·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수행했다. 리수용-리용호로 이어지는 외교 라인 핵심에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에서 최근 승진한 최선희까지 총출동한 것.

특히 미국과의 대화 경험이 풍부한 ‘대미통’ 최선희가 북한 외무성에서 중국 담당인 리길성 부상 대신 함께했다는 점에서 김정은과 시 주석이 이번 회동에서 북-미 회담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핵화 절차 및 시기 등을 두고 의견을 나눴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조선중앙TV는 “최고지도자 사이의 전략적 소통이 진행됐다”고 강조해 우회적으로 비핵화 전략 논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완전한 비핵화(CVID)’에서 ‘영구적 핵폐기(PVID)’로 비핵화 기준을 높였다. ‘평화적 우주 개발’을 명분으로 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까지 불가하다며 김정은을 연일 압박하고 있다.

물론 김정은이 시 주석을 만나 좀 더 적극적인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8일 중국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이 시종 한결같았던 명확한 입장”이라며 “관련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과 안보 위협만 없애면, 북한은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어 “한반도 문제의 전면적인 정치 해결 과정을 추진해 최종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장기 평화가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했다는 것은 그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통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비핵화에 나설 테니 반대급부로 더 많은 보상을 내놓으라는 공개 압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정은은 “북-미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수립하고, 각 측이 책임 있게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취하기를 바란다”며 3월 베이징 방문 당시 내건 ‘동시적 단계적 조치’를 시 주석을 옆에 두고 다시 언급했다.

○ 시진핑, 비핵화 모멘텀 소외 우려했나

김정은의 3월 방중이 전통적인 북-중 관계의 복원을 알리는 차원이었다면 이번 방문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적인 성격이 짙어 보인다. 북한 매체는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를 언급하지 않는 대신 북-미 대화의 실무자인 김영철뿐 아니라 리수용-리용호-최선희 등 대미 라인까지 여러 차례 비중 있게 언급했다. 중국 수뇌부와 ‘북-미 대화 준비형’ 실무회담을 했다는 얘기다.

동시에 이번 북-중 정상 간 회동 성사에는 시 주석의 의지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최근 북-미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주한미군 감축설, 평화협정 체결 등이 모두 중국에 민감한 사안들이라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한미 군사훈련 규모 축소나 비핵화를 전제로 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 등도 중국으로선 직접 들여다보고 싶은 의제다. 시 주석은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선 중국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중재 역할을 맡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그런데도 북-미가 최근 비핵화는 물론 그에 대한 반대급부 논의까지 진행하며 잰걸음을 재촉하는데 그 내용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자 중국 정부가 불안감을 드러냈다는 게 정부 안팎의 이야기다. 이번 회동도 이런 조건이 맞아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번 북-중 정상 간 회동을 특수한 필요에 따라 급하게 잡힌 게 아니라 사전 약속에 따른 정해진 수순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우리 외교부 관계자는 “북-중은 특히 최고지도자 일정과 관련해 폐쇄적일 만큼 보안이 철저하다”며 “이미 3월 정상회담에서 약속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다롄=윤완준 특파원·정동연 채널A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