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예행연습 영상 공개…베트남 女 “유튜브용 몰카인 줄”

ptk@donga.com2018-03-21 16: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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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13일 북한인의 지령을 받아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한 혐의로 기소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30)이 “유튜브용 몰래 카메라(prank)를 찍는 줄 알았다”고 호소하며 사건 약 열흘 전 다른 곳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흐엉 측 변호인은 20일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영상 한편을 증거로 제출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11일 전인 지난해 2월 2일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CCTV영상이다.

이 영상에는 한 여자가 누군가의 뒤를 몰래 따라가 입을 막는 모습이 담겨있다.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국제공항에서 흐엉이 김정남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동작이다.

공항 한쪽에서 서성이던 CCTV 속 여자는 여행가방 카트를 밀고 가는 검은 옷의 남자를 발견하고 뒤쪽으로 따라 붙었다. 이어 뒤 양팔을 뻗어 남자의 입을 감싸는 동작을 취하고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

변호인에 따르면 CCTV 속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베트남 공무원이며, 흐엉은 지령자로 부터 250달러(약 27만원)를 받는 조건으로 이 남자의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장난을 쳤다. 흐엉은 유튜브용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흐엉은 11일 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에게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 때 지령자가 흐엉의 손에 발라준 것은 로션이 아닌 치명적 화학무기 VX 신경작용제였단 점이다.

변호인은 북한인 용의자 리지현(34)이 2016년 1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비디오를 찍는다”고 속여 흐엉을 고용했음을 강조했다.

흐엉이 과거 유튜버로 활동 했던 기록도 이 같은 주장을 일부분 뒷받침 하는 대목이다.

흐엉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령자들이 사전에 수차례 몰래카메라 명목으로 예행 연습을 시켰다는 의미가 된다. 흐엉은 진술서에서 “사건 전에 몇몇 사람의 얼굴에 베이비로션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바르는 연습을 했었다”고 밝혔다.

범행 직후 손을 씻은 부분에 대해서는 “그것(용액)이 무엇인지 몰랐고 단지 냄새가 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지난해 10월부터 흐엉과 또다른 인도네시아 출신 피고인 아이샤(25)에 대한 재판을 진행해 왔다. 말레이시아 법상 살해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면 교수형에 처해질 수 있다. 판결은 이르면 올해 상반기 안에 내려질 예정이다. 이들에게 지령을 내린 용의자로 말레이시아 경찰이 지목한 리지현 등 북한인 4명은 사건 직후 북한으로 도주했다.

박태근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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