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방아 찧고도 신기록… 신비로운 ‘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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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정(오른쪽)이 2월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예선에서 넘어진 이유빈을 쫓아가 터치하고 있다(왼쪽 사진). 여자 계주팀은 경기 초반 넘어지면서 선두권과 경기장 반 바퀴 가까이 벌어졌지만 대역전극을 펼치며 조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경기 후반 1위로 올라선 심석희(앞쪽)가 역주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강릉=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월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예선 첫 번째 경기. 네 바퀴째를 돌던 한국 대표팀의 막내 이유빈(17·서현고)이 코너를 돌고 휘청한 뒤 갑자기 엉덩방아를 찧고 뒤로 넘어졌다. 그 순간 관중석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이유빈의 ‘엉덩이 밀어주기’를 기다리던 다음 주자 김예진(19·평촌고)도 더 이상 속력을 못 내고 뒤를 바라봤다. 레이스를 펼치던 선수들과의 격차도 순식간에 반 바퀴 이상 벌어졌다.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던 순간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이 나섰다. 전광석화같이 이유빈을 따라간 최민정은 이유빈의 손을 터치한 뒤 한 바퀴를 돌았다. 이유빈의 앞 주자로 한 바퀴 반을 돈 최민정은 이유빈의 엉덩이를 밀어주는 역할을 마치고 트랙을 돌다 이유빈이 넘어진 것을 보고 다시 달린 것이다. 반 바퀴를 달리고 당초 이유빈의 다음 주자인 김예진 다가오자 ‘좀 더 돌겠다’는 수신호를 주고 반 바퀴를 더 돈 뒤에야 김예진의 엉덩이를 밀었다. 쇼트트랙에서는 순서는 정해놨지만 특정 선수가 더 달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계 최강’ 여자대표팀에 경기 초반 실수는 충분히 극복 가능했다. 최민정의 재치 있는 투혼에 남은 선수들도 힘을 발휘했다. 남은 23바퀴에서 극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실수를 했던 이유빈도 이를 악 물고 격차를 조금씩 지워갔다. 반 바퀴 차이는 반의 반 바퀴로, 급기야 10m 이내로 줄어갔다. 한때 방송 중계카메라에서 사라진 여자대표팀 선수들의 모습도 한 화면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1바퀴를 남기고 본격적인 ‘역전쇼’가 펼쳐졌다. 최민정이 헝가리 선수를 제치고 4위에서 3위로 치고 올라간 뒤 9바퀴를 남기고 김예진이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OAR)’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다음 주자인 심석희(21·한국체대)가 약 한 바퀴를 돈 뒤 인코스를 파고들며 캐나다 선수까지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막내의 실수를 언니들이 돌아가면서 만회해준 것이다. 한번 선두로 올라선 여자대표팀은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전광판에 찍힌 공식기록은 4분6초387.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당시 중국이 세운 올림픽 기록(4분6초610)을 깨는 순간이었다. 한 차례 실수한 뒤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 신기록까지 세운 여자대표팀에 경기장을 찾은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여자대표팀이 보여준 위기 대응은 철저한 준비의 결과였다. 쇼트트랙은 선수들이 레인 구분 없이 한데 섞여 자리를 다투기 때문에 자주 넘어지고 반칙으로 인한 실격 등 돌발 상황이 많다. 대표팀은 이에 대비해 훈련 중 호흡훈련 외에도 몸싸움 대비 등 여러 시뮬레이션 훈련을 비공개로 진행했다. 꼼꼼한 준비와 수없이 반복된 훈련이 이날의 기적 같은 올림픽 기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날 방송 해설을 한 전이경 싱가포르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42)은 “선수들이 돌발 상황에 대한 훈련을 잘 해온 것 같다”며 “이런 실력이라면 초반이 아닌 중반에 실수를 했어도 만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선수들도 한국 선수들의 역주에 적잖이 놀란 분위기다. 카산드라 브라데트(29)는 “(한국이 넘어진 뒤) 우리도 다리가 힘들 정도로 속력을 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하게 그들이 아주 빨리 따라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여자대표팀의 금빛을 향한 계주 질주는 20일 펼쳐진다.
 
강릉=김배중 wanted@donga.com·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