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요” 설렘 한 박스, 짜증 한 상자…그래도 기대돼요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띵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들어오는 상자가 미소를 선물합니다. 설이 코앞인 이맘때면 경비실마다 그득한 택배 상자만 봐도 흐뭇합니다. 내 품에 오기까지 상자는 어떤 길을 거쳐 왔을까요. 택배에 얽힌 울고 웃는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
 
▼ 박스만 봐도 ‘심쿵’ ▼

“여자친구가 핀란드에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 해서 택배로 보내줬어요. 각종 라면과 쉽게 조리 가능한 포장식품 등을 보내줬죠. 받고 나서 정말 고맙다고, 감동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고마워해서 뿌듯했죠. 그만큼 외국에서 한국 택배를 받으면 더 감동이란 거겠죠?”―안모 씨(31·회사원)

“어릴 때 명절이면 아버지 앞으로 과일상자 같은 선물이 많이 왔어요. 제 관심은 선물보다 택배상자 속 뽁뽁이(에어캡)였죠. 동생이랑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했어요. 크기가 클 땐 둘이 마주 앉아서 빨리 터뜨리기 게임을 했죠. 요즘도 택배 안에 뽁뽁이가 있으면 예능프로 보면서 터뜨리곤 해요.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손도 심심하니까요.”―김수환 씨(26·대학생)

“한 달에 오는 택배 20개 중에 육아용품이 19건 정도 돼요. 음식, 과일은 신선도 때문에 직접 보고 사는데 육아용품은 가격이 차이가 커서 인터넷으로 사거든요. 애가 셋이어서 여유 있게 쇼핑하기 힘든 것도 있고요. 셋 데리고 마트에 가면 계획한 것 외에도 사달라고 보채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전엔 제 옷을 주로 사서 택배가 오면 선물 받는 기분이었는데 그런 기분 느껴본 지도 꽤 된 거 같아요.”―안지나 씨(34·가정주부)

“자취하면 집에서 요리해 먹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귀찮은 것도 있고 요리할 줄 아는 게 몇 없어서요. 그래서 주로 밖에서 사먹었는데 돈이 너무 나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며칠 뒤에 택배가 왔는데 박스에 김치랑 장조림 같은 밑반찬들과 간단하게 먹기 좋게 자른 마늘, 고추, 파가 잔뜩 있었어요. ‘나 하나 먹이겠다고 정말 고생하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울컥했죠.”―김모 씨(20·대학생)

▼ 오는 택배, 가는 情 ▼

“작년 설에 자주 방문하는 할머니 댁에 배 한 박스를 배송하러 갔었죠. 그 집은 명절 때 선물이 굉장히 많이 오거든요. 배송을 마치고 가려는데 갑자기 ‘우리 집은 많이 받았어. 고생하시는데 이걸로 설 쇠어요’라고 하시더니 다시 배 박스를 주시더군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얼떨떨했지만 따뜻한 정 덕분에 가족들과 설 잘 보냈습니다.”―정의수 씨(49·CJ대한통운 경기 여주시 택배기사)


“아이 키우는 집에 육아용품들을 많이 배송해요. 엘리베이터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걸어 올라가는데 무거워서 힘들어요. 그런데 몇 년 지나 배달하던 집 아이가 커서 걸어 다니며 인사를 하더라고요. 어머니한테 ‘많이 컸네요’라고 하자 ‘기사님이 고생해서 키워주신 거예요’라고 해주시는데, 이럴 때 짜증이 다 날아가죠. 정작 여섯 살 된 우리 아들한테는 항상 집에서 피곤해서 잠만 자니까 ‘아빠는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라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요.”―김광석 씨(43·한 지방 택배기사)

“나이 먹고 집에서 놀면서 병원 다니는 것보다는 일하면서 운동도 하고 돈도 버는 게 좋겠다 싶어서 택배 일을 시작했어요. 일은 힘들긴 하지만 보람되고 재밌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저희가 젊은 사람보다는 느리고 자주 깜빡깜빡 하니까 늦게 배송할 때가 있는데 주민분들이 이해해 주시니 감사하죠.”―전모 씨(75·인천 계양구 실버택배기사)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버택배’. CJ대한통운 제공
▼ 택배가 무서워요 ▼

“바쁘다는 택배 기사분에게 컴퓨터 부품이 파손될 우려가 있으니 경비실에 맡기지 말고 집으로 갖다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문 앞에 두고 가는 거예요. 더구나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모습을 쳐다봤더니 엄청 살벌하게 노려봤어요. 택배 받으면서 ‘해코지 당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습니다.”―이모 씨(28)

“작년 11월에 해외 직접구매로 아이 옷을 주문했어요. 물건이 한국에 온 걸 배송 현황으로 확인하고 기다렸어요. 보통 이틀이면 오는데 영 소식이 없어서 전화해보니 택배송장은 있는데 물건이 없대요. 중간에 물건이 없어진 거죠. 택배회사에선 ‘물건 못 찾아준다’라고 말하며 배상도 안 해준다더군요. 계속 전화하니까 배상해주겠다며 명세표를 보내 달래요. 살 때보다 달러 환율이 떨어진 상태여서 주문한 날짜의 환율로 계산해서 배상해달라고 요청해 겨우 손해 없이 받았죠.”―이혜선 씨(42·회사원)

“혼자 있을 때 벨이 울리면 집에 없는 척해요. 배송 온다는 연락 없이 오는 경우가 있어서 진짜 택배기사인지 확신이 안 들 때가 있거든요. 가끔은 ‘오빠, 택배 좀 받아줘. 아냐, 그냥 내가 갈게’라고 말하곤 문을 열기도 해요. 혼자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무턱대고 문 열어드리기엔 요즘 세상이 흉흉하잖아요. 매번 늦게 문 열어드리기도 죄송스럽지만요.”―박정민 씨(24·대학생)

▼ 택배기사는 로봇이 아니에요 ▼


“하루에 250개를 배송하다 보면 오후 7시를 넘겨 고객에게 갈 때가 있어요. 늦게 가면 젊은 분들이 반말에 욕설, 폭언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한 번은 오후 11시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객님이 커피랑 빵을 들고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건네주시면서 ‘고생 많으세요’라고 하시는데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엄청 울었죠.”―유성욱 씨(53·A업체 택배기사)

“대부분 택배 일 하시는 분들은 기존에 하던 일이 어려워져서 마지막 직업으로 선택하신 분들이 많아요. 일한 만큼 받아갈 수 있거든요. 저는 빚 문제도 있어서 하루에 17시간씩 배송하는 편이죠. 40개월 된 늦둥이 아들이 있는데 1주일에 얼굴을 6일은 못 봐요. 한창 아빠랑 놀기 좋아할 나이인데 그게 좀 슬프죠. 그래서 너무 피곤해도 일요일에는 꼭 놀아주려고 노력중입니다.”―원영부 씨(49·B업체 택배기사)

“급하게 돈이 필요해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한 적이 있어요. 오후 7시∼오전 7시 12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박스를 컨테이너에 실었죠. 허리도 못 펴고 일해서 허리, 등이 아프고 숨이 가빠서 계속 입으로 숨을 쉬니까 입안도 헐었죠. 삶이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느낌이죠.”―조상준 씨(28·취업준비생)

▼ 택배도 4차 산업혁명 ▼

“2017년 11월에 전남 고흥군 득량도에서 드론 택배 시범운행을 했을 때 20분 이내에 배달이 가능했습니다. 기존보다 1시간 넘게 단축됐죠. 드론 택배는 도서·산간지역 주민이 우편물을 더 빨리 수령할 수 있고 해당지역 집배원의 업무를 줄여주는 장점이 있어요. 2022년 상용화를 목표로 안전한 드론 운용을 위한 낙하산 설치, 장애 대응, 해킹에 대한 보안 등 관련 기술개발과 법·제도적 보완에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노충영 씨(48·우정사업본부 물류기획과 사무관)

“다른 사람과 통화하기를 꺼리는 젊은 세대들은 ‘챗봇’을 활용해 상담원 통화 없이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고객 문의 답변을 인공지능을 이용해 언제든 바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죠. 또 하루 수만 건의 전화를 받는 상담원의 업무 부담도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사고, 클레임 접수 등을 제외한 모든 택배 관련 상담이 가능하고 60% 이상의 이용객 만족도를 보이고 있습니다.”―이창화 씨(45·C택배 고객만족팀장)

“‘더 드림 동구택배’ 사업은 4개 택배사에서 아파트 내 한 거점으로 물건을 갖다 주면 참여 어르신들이 각 가구로 물품을 배송하는 시스템입니다. 평균 한 달에 40시간 정도 근무합니다. 노인 일자리도 창출하고 어르신들이 지역지킴이 역할을 할 수도 있죠.”―홍태경 씨(27·광주동구시니어클럽 사회복지사)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조경준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