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10명중 7명 “피로 때문에 올바른 진료 못 했다”

주간동아
에디터 주간동아|
대형병원 당직 전공의 인당 평균 환자 수 52명 
심지어 300명 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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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공의 10명 중 7명이 피로와 과도한 업무 탓에 진료를 제대로 못 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의학지식이 부족해 제대로 진료하지 못한 적이 있다는 전공의도 10명 중 6명이나 됐다. 그만큼 많은 전공의가 의료사고에 노출돼 있고, 환자의 안전 또한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결과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전국 각급 병원에서 수련 중인 전공의(인턴 1년, 레지던트 1~4년 차) 1만280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 29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한 달간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조사 대상 중 3800여 명이 응답했고 통계분석은 고려대 통계연구소가 진행했다.

문항별 분석 결과를 보면 ‘누적된 피로와 불충분한 수면으로 환자에게 올바른 진료를 시행하지 못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8.5%가 ‘그렇다’고 답했다. 10명 중 7명꼴이다. 빈도수는 대형병원(단일병원 기준 전공의 500명 이상)이 응답자의 73.5%로 가장 높았고 중대형병원(전공의 200명 이상) 70.9%, 중소형병원(전공의 100~199명) 66.4%, 소형병원(전공의 99명 이하) 51.5% 등이었다(그래프1 참조).
주당 80시간  ·  연속 36시간 초과 ‘비일비재’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동아DB] 
‘과도한 업무량으로 환자에게 올바른 진료를 시행하지 못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도 68.2%나 됐고, 빈도수 역시 비슷하게 나타났다(그래프2 참조). 올바른 진료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환자의 질병을 제때 발견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오진한 적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공의들이 제대로 진료조차 못 할 정도로 피로와 업무량에 시달리는 원인은 근무시간과 무관치 않다. 대형병원 전공의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89.18시간으로, 주 6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15시간에 달한다. 중대형병원 전공의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90.86시간으로 대형병원보다 오히려 더 길었고, 중소형병원 전공의는 83.93시간으로 대형 또는 중대형병원보다 다소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공의 대부분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에서 규정한 주당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것이다.

전공의 수련 연차별로는 인턴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이 102.34시간으로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주일에 160시간씩 근무했다는 인턴도 있었다. 일주일이 168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8시간밖에 쉬지 못한다는 얘기다.

‘최근 4주 동안 최대 연속 수련시간이 36시간을 초과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인턴 응답자 1059명 중 40%에 달하는 426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전공의법에는 ‘수련병원 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연속해 36시간을 초과해 수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지만 대부분 병원이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전공의 수련 연차가 높아질수록 근무시간은 줄었다. 레지던트 1년 차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92.38시간, 2년 차 85.2시간, 3년 차 79.12시간, 4년 차 69.58시간 등으로 2년 차까지는 법정 규정시간인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지식 부족’ 58.4%, ‘상급자 능력 부족’ 36.6%
전공의 수련환경 평가에서 1위를 기록한 삼성서울병원. [뉴스1]  
그렇다면 이처럼 오랜 근무시간 동안 수련은 제대로 받을까. ‘의학지식 부족으로 환자에게 올바른 진료를 시행하지 못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공의 전체 응답자의 58.4%가 ‘그렇다’고 답했다(그래프3 참조).

병원 규모별 빈도수를 보면 대형병원 60%, 중대형병원 59.7%, 중소형병원 55%, 소형병원 54.3% 등으로 병원 규모가 클수록 오히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련 연차별로는 레지던트 1년 차 63.1%, 2년 차 62.3%, 인턴 58.1%, 레지던트 3년 차 54.9%, 4년 차 54.7% 등으로 인턴보다 레지던트 1~2년 차에서 의학지식 부족을 호소하는 빈도가 높았다.

‘상급자의 능력 부족으로 인해 환자에게 올바른 진료를 시행하지 못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36.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처럼 의학지식 부족과 상급자의 능력 부족 등으로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건 그만큼 수련환경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가장 심각한 부분은 전공의가 당직근무를 할 때 담당해야 할 환자 수다. 규모가 가장 큰 대형병원의 경우 당직 전공의 1명이 담당해야 할 평균 환자 수가 51.8명이었다(그래프4 참조). 일부 병원의 전공의는 심지어 300명 넘게 담당하기도 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전공의는 “전공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외과의 경우 당직근무를 할 때 전공의 1명이 환자 200~300명을 담당해야 하는 병원이 적잖다”면서 “일부 병원에서는 전공의 1명이 외과병동 전체를 도맡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얼마 전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이대목동병원의 경우 사고 당일 전공의 5명이 담당해도 부족한 신생아중환자실과 소아병동, 소아응급실 등 세 구역에 단 2명만 배치했던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또 대형병원 전공의가 일반 진료를 할 때 시간당 평균 외래환자 수는 9명으로, 6~7분에 1명꼴로 진료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의 진료를 돕는 경우에는 시간당 평균 외래환자 수가 16.35명이나 됐다. 3~4분에 1명꼴로 진료를 봐야 가능한 숫자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제대로 진료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응급실 환자 하루 평균 114명 … 의사 4.42명 불과 
응급실 수련환경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답한 응급실 내원 환자는 하루 평균 114명가량이다. 많게는 350명에 이른다는 전공의도 있었다. 하지만 응급실 평균 의사 인력은 4.42명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급환자는 상태에 따라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거나 빠른 처치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이는 턱없이 부족한 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전공의 수련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여전히 환자 진료에 영향을 끼칠 만큼 누적된 피로와 불충분한 수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입원 전담의 제도 등 대체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 및 재정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임인석 중앙대 교수(소아청소년과), 강청희 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신승준 고려대 통계연구소 교수, 대한전공의협의회 이사진 등으로 구성된 ‘전국 병원 수련환경평가 검증위원회’에서 최종 검증 과정을 거쳐 신뢰도를 높였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