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美 유망직업 ‘방사능 시계공’…꿈은 악몽이 됐다

이예리 기자
에디터 이예리 기자|
사진=youtube
‘하루 종일 라듐(radium)을 만질 수 있는 꿈의 직업.’

방사능의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은 1900년대 초반, 사람들은 방사성 원소인 라듐에 열광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아름다운 녹색 빛을 뿜어내는 신비한 물질에 매혹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라듐을 화장품, 물감, 치약, 심지어 음료수에까지 넣어 사고 팔았습니다. 현대인들이 비타민 워터를 마시듯 ‘라듐 워터’가 건강식품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최근 CNN은 ‘라듐 아가씨들(Radium Girls): 빛나는 시계와 어두웠던 시대’라는 칼럼에서 당시 인기 직업이었던 ‘라듐 시계공’을 소개했습니다. 라듐이 인기를 끌던 1910년대 미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야광시계 공장 직원이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주로 여성이었던 라듐 시계공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라듐 물감을 시계에 바르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물감을 정교하게 바르려고 라듐 바른 붓을 자기 입술 위에 올려 뾰족하게 다듬기도 했습니다.

라듐 화장품 광고. 사진=youtube
방사능을 뿜어내는 라듐에 오래 노출되면 당연히 몸에 좋을 리가 없었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라듐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겼습니다. 대중은 라듐이 암을 고치고 노화를 막으며 비타민처럼 몸에 활력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라듐을 하루 종일 만질 수 있는 직업인 ‘야광시계 공장 직원’은 멋진 여성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동경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뉴저지 야광시계 공장에서 일하던 ‘라듐 아가씨’들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이유 모를 두통과 치통 등을 호소했으며 1922년에는 22세였던 몰리 마기아(Mollie Maggia)라는 여성이 알 수 없는 통증에 1년 여 간 시달리다 숨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매독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진짜 원인은 방사능 피폭 때문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마기아 씨의 아래턱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분리될 정도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방사능에 오래 노출되면 뼈가 약해지고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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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그레이스 프라이어. 우=라듐 도료를 사용한 야광시계
이후 점차 방사능에 회의감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925년 야광시계 공장을 상대로 한 첫 소송이 제기됐습니다. 원고는 공장 직원이었던 그레이스 프라이어(Grace Fryer)라는 여성과 동료들이었습니다. 프라이어 씨는 라듐이 건강에 악영향을 가져왔다고 주장했지만 회사 측의 방해 탓에 변호사를 찾는 데 2년이나 걸렸습니다. 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피해자들은 속속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들은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라듐 야광시계 공장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책 ‘라듐 걸스(the Radium Girls)’를 집필한 케이트 무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야광시계 공장 여공들의 희생은 당대 사람들에게 방사능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며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들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그 대부분을 알려 준 것은 시계공장 여공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빚 진 셈”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