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이어 나까지 치매증세” 짐 되기 싫어 떠난 70대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2018-01-12 13:07
사진=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동아일보DB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임대아파트. 평소 조용하던 김모 씨(74)의 집이 모처럼 떠들썩했다. 김 씨의 자녀들이 오랜만에 모여 아버지의 생일잔치를 열었다. 사실 김 씨의 생일은 이날이 아니다. 자녀가 전부 모일 수 있는 날을 잡다 보니 2017년 마지막 날이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하룻밤을 지냈다. 새해 첫날 자녀들은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날이 김 씨가 자녀들과 함께한 마지막 날이었다.

1월 8일 오후 4시 30분경 김 씨는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전화를 잘 받던 김 씨는 6일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걱정이 된 가족이 8일 집으로 찾아갔다. 김 씨는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경찰이 추정한 사망 시간은 7일 오전 11시경이다.

최근 3년간 김 씨는 혼자 살았다.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이사 온 건 약 9년 전.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아내와 함께 살았다. 아내는 가벼운 치매가 있었지만 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다. 그러다 3, 4년 전부터 증세가 심해졌다. 주민 최모 씨(76·여)는 “김 씨 아내가 나중에 걷는 것도 힘들어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아픈 부인을 혼자 챙기는 건 어려웠다. 결국 김 씨는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냈다.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드는 병원비는 자식들이 십시일반 모았다. 김 씨는 ‘미안하니 내 생활비는 알아서 벌겠다’며 계속 일했다. 직업은 청소원이다.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호텔에서 일했다. 지난해 12월 김 씨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생일잔치를 열고 8일 후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A4용지 절반 크기의 종이에 유서를 남겼다.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가족들은 김 씨가 정식으로 치매 진단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 들어 어떤 일을 자주 잊어버렸다고 한다. 아내가 치매로 입원 중인 상황에서 자신에게도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9일 빈소를 지키던 김 씨의 딸(35)은 “어머니가 투병 중인 상황에서 당신까지 나중에 증세가 심해지면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치매 증세가 나타났을 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약 72만 명(2017년 기준)으로 추산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이 가장 큰 질환(1위·54.8%)이다. 의료비 지출 부담도 가장 크다(1위·34.3%). 치매 어머니를 모셨던 강모 씨(47)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위험해지는 게 치매 환자다. 우리도 6남매가 돌아가며 간병했지만 가족들 모두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은지 eunji@donga.com·권기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