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하와이로 간 ‘사진 신부’… 고대하던 자유 대신 고단한 삶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2018-01-11 11:56
위 사진은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가운데)가 1915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기 위해 잠시 머무른 일본 고베에서 다른 사진신부들과 함께 찍은 것이다. 그가 남긴 자전적 기록이 책으로 발간됐다. 일조각 제공
하와이 사진신부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20세기 초 미국 하와이에 노동이민을 간 남성과 서로 사진만 교환한 뒤 혼인한 여성을 일컫는다. 1910, 20년대에 600∼1000명이 이렇게 조선을 떠나 하와이로 갔다. 그런 사진신부였던 천연희 여사(1896∼1997)의 자전적 기록이 담긴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의 이야기’(일조각)가 최근 출간됐다.

“나는 소설가도 아니요, 작문가도 아니요, 시를 잘 짓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 한국 여자 사진 혼인해 온 이들이 대단히 일찍 깨었고 살기를 원해서 (하지만) 남편들은 나이 많고, 아무 재주 없고, 사역(일)도 잘 못하니 (더구나) 아이들은 많이 있어서 이 여자들이 살길을 찾아서 빨래숍도 내고, 바느질도 하고, 장사는 하려도 밑천이 없어 큰 회사나 청국 사람에게 헌집을 몇 해 세내어….”

‘하와이…’는 천 여사가 1971년부터 1984년까지 남긴 노트 7권을 현대 말투로 옮기고 해제를 달았다. 경남 진주의 비교적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천 여사는 1915년 하와이 마우이섬의 사탕수수농장 노동자 길찬록에게 시집을 왔다. 이민 배경에는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어머니의 허락과 지원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일제강점기란 식민지 현실이 있었다.

“모든 것이 압박과 압제를 주었다. …제국 정치의 반대자라거나 도모자라고 하고 옥에 가두고 추달하여 병신을 만들어 정신병자 모양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을 만들어 버렸다. 그와 같이 자유 없는 나라 백성은 참으로 불쌍하였다.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상처가 되어 자유 세상을 찾게 되었다.”

천 여사는 노트와 함께 구술 녹음테이프 24개와 사진, 편지 등도 자료로 남겼다. 이런 소중한 기록을 남긴 하와이 사진신부는 그를 포함해 2명뿐이다. 천 여사의 자료는 이덕희 하와이이민연구소장 주선으로 미국 하와이대에 기증됐다가 2014년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주와 해제를 이끈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머리말에서 “천연희는 온갖 역경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냈고 인간다움의 존엄을 보여준 여성이었다”며 “기록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고 사회,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 하와이 이민 역사와 여성사 연구의 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