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식료품 사거나 자녀 데려오다 다쳐도 산재 인정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대구 달성군의 한 직물제조업체에 다니는 A 씨(42)는 4일 오전 8시경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오른팔이 부러졌다. 밤을 새워 일한 뒤 평소처럼 집에 가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A 씨가 입원한 병원은 출퇴근 재해(출퇴근 도중 당한 업무상 재해) 신청을 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사상 처음으로 이를 첫 출퇴근 재해로 승인했다. A 씨가 늘 다니던 길로 퇴근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1월 1일부터 출퇴근 도중 사고를 당하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나 사고를 당했다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리송한 부분이 많다. 출퇴근길 산재 적용의 궁금증을 질의응답(Q&A) 형식으로 정리했다.
Q. 걸어서 출퇴근하다 다쳐도 산재로 인정되나. 

A.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사가 제공한 통근버스로 출퇴근을 하다 다쳤을 때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출퇴근 재해’ 개념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통근버스뿐 아니라 대중교통, 자가용, 자전거, 도보 등 모든 교통수단을 포함했다. 공사나 시위, 집회, 카풀 때문에 매일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우회하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Q. 퇴근 후 친구와 술을 마신 뒤 집에 가다 다쳐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나. 

A.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출퇴근 재해는 원칙적으로 ‘통상의 경로’를 유지했을 때만 인정된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을 벗어나거나 출퇴근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보다가 다쳤다면 출퇴근 재해로 인정받을 수 없다. 다만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생활용품 구입 △직무 관련 교육 및 훈련(학원 수강) △선거권 행사 △자녀 또는 장애인 등하교나 픽업 △진료 △가족 간병 등 6가지 예외 사유는 산재로 인정한다. 6가지 중 하나를 하기 위해 출퇴근길을 벗어났다가 다쳤다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퇴근 후 친구와 술을 마시는 것은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 다만 회식은 업무의 연장으로 본다. 회식 후 집에 가다가 다치거나 사망했다면 산재로 인정한다.

Q. 퇴근 후 백화점에 들러 물건을 사는 것도 ‘생활용품 구입’에 해당하나.


A. 물품에 따라 다르다.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러 식료품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산 뒤 집에 가다 다쳤다면 산재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샀다면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명품 가방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Q. 출근길에 잠깐 커피를 사러 갔다 오다가 다쳤다면….


A. 신문 구입이나 차량 주유, 커피 테이크아웃, 용변 등 짧은 시간 동안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상행위는 출퇴근 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본다. 커피를 사기 위해 커피숍으로 이동하거나 커피를 사고 출퇴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 하지만 매장에서 커피를 사는 도중 다치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 퇴근길에 들른 백화점에서 미끄러졌거나 마트 진열대 물품이 떨어져 다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사는 행위와 구매 장소 자체는 ‘출퇴근길’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 매장 등 물건을 파는 장소에서 벗어나 출퇴근길로 돌아가기 시작한 이후 발생한 사고만 출퇴근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Q. 퇴근 후 요가나 운동을 한 뒤 집에 가다 다쳤다면….


A. 요가나 운동은 ‘취미생활’이기 때문에 6가지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 업무와 관련한 훈련이거나 영어학원 수강처럼 자기계발 목적이 있어야 출퇴근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병원 진료 역시 치료 목적이어야 한다. 피부병이 생겨 퇴근길 피부과에 들러 치료를 받았다면 통상의 출퇴근 과정으로 보지만 보톡스를 맞았다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 치료나 예방 목적의 진료만 허용되고 미용을 위한 시술과 수술은 허용되지 않는다.

Q. 퇴근길에 학원에 들러 고등학생인 딸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것은 허용되나.

A.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자녀 픽업은 고등학생까지 허용된다. 대학생 자녀의 등하교를 돕다가 사고를 당하면 산재로 인정받을 수 없다. 특히 픽업 장소는 학교나 학원 등 교육기관이어야 한다. 아르바이트나 취미 활동을 하는 장소로 자녀를 데리고 가거나 데려 오는 것은 출퇴근 재해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일터나 취미 장소는 교육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Q. 개인택시 기사도 출퇴근 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나.

A.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택시, 퀵서비스, 화물차 운전기사 등은 출퇴근 개념이 애매하다. 만약 차고지가 집 밖의 장소에 별도로 있다면 날마다 차고지까지 오가는 것은 출퇴근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 집과 가까운 곳에 차를 두고 일한다면 출퇴근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정부는 출퇴근 개념이 애매한 직종의 출퇴근 재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직종은 일반 산재보험료만 부담하고 출퇴근 재해보험료는 부담하지 않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