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기숙사가 혐오시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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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대학생 행복기숙사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학생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짓는 행복기숙사는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배려 대상 대학생에게 거주 우선순위를 준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월 9일 서울 성북구 A아파트 앞 경비초소. 주민 4명이 기름난로 주변에 빼곡히 둘러앉아 있었다. 3.3m² 남짓한 초소 안에는 커피 옥수수 귤 누룽지 등 먹을거리는 물론 휴지와 쓰레기봉투 같은 생필품도 있었다. 핫팩과 담요 등 보온용품도 보였다. 추워진 날씨 탓에 주민들은 두꺼운 외투에 모자, 장갑으로 ‘중무장’했다. 이들의 시선은 아파트와 35m 떨어진 공터를 향했다. 이 모습은 지난해 10월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 기숙사 부지는 1년째 허허벌판

A아파트 주민들이 한겨울 ‘보초 근무’에 나선 이유는 저소득층 대학생들이 머물 공공 기숙시설인 ‘행복기숙사’ 건립을 막기 위해서다. 주민들은 초소에 머물다 기숙사 터로 향하는 공사 차량이 보일 때마다 재빨리 달려가 맨몸으로 막아선다. 주민 박모 씨(67·여)는 “주민 40명이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실시간 상황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초소에 나오지 못하면 베란다에서 현장을 내려다보며 감시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공사 차량을 막아선 주민들과 시공사 관계자들이 마찰을 빚어 경찰까지 출동했다.

행복기숙사는 한국사학진흥재단이 건립을 추진한다. 저소득층 대학생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월세는 19만 원 수준이다. 대학가 원룸이나 고시원의 절반 이하다. 완공되면 서울 지역 대학생 750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학교 구분 없이 형편이 어려울수록 우선권이 주어진다. 지난해 2월 재단은 서울시와 성북구로부터 아파트 앞 국유지(5164m²) 사용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공사는 시작도 못 한 상태다.

주민들은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주민은 “대학생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내 손자가 본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대학생 기숙사 앞에는 콘돔이 하루에 몇 개씩 나온다고 한다. 기숙사가 생기면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는 “기숙사에 공실이 생기면 재단 측이 숙박시설처럼 임대사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동네가 모텔촌이 된다”고 주장했다.  
사진=동아일보DB
○ “기숙사가 혐오시설인가” 비판 고조

기숙사 착공이 1년 가까이 표류하자 주민들을 비판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은 주민들이 대학생 기숙사를 반대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재학생 이모 씨(23·여)는 월세 60만 원짜리 원룸에 살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월세를 벌었지만 취업 준비에 바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있다. 이 씨는 “기숙사를 반대하는 이유가 결국 아파트 가격 떨어지는 걸 걱정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대학 기숙사를 마치 혐오시설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사학진흥재단 측은 등·하교 시간에 중장비 이동을 하지 않는 등 타협안을 제시했다. 또 임대사업 계획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재단 관계자는 “행복기숙사는 서울의 모든 대학생에게 기회가 제공된다. 수요가 공급보다 항상 많아 임대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사가 지연되자 성북구는 지난해 9월 공청회를 열었다. 주민들은 공청회장 밖에서 ‘기숙사 반대’ 집회를 열었을 뿐 정작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성북구는 지난해 말 구와 주민, 재단, 시공사가 참여하는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협의체에는 참여하겠지만 기숙사를 짓지 말라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