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빠지면 튤립은 알뿌리 남지만 가상화폐는 뭐가 남을까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자료사진 출처 | ⓒGettyImagesBank
이쯤이면 누구나 ‘나도 한 번’이란 생각이 날 만도 하다. 10년 전엔 껌 하나 살 수 없었던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1년 만에 1400% 뛰어 2000만 원이 넘는 대박 투자상품으로 바뀌었다. 대박을 나만 놓치는 것 아닐까. 추격 투자에 나선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족’들로 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포모족의 상당수는 바늘구멍 취업난에 지친 청년세대들이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이용자의 58%가 20, 30대로 조사됐다. 수십억 원 하는 강남아파트 투자는 못해도 “이건 한번 해볼 만하다”며 대학생부터 젊은 직장인들까지 ‘밀레니얼 세대’들이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포모족의 불안감은 이해하지만, 이런 광풍은 ‘돈 가뭄’이 극심했던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2008년 9월 15일 글로벌 투자은행(IB) 리먼 브러더스 파산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는 금융위기의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래 상대방을 믿지 못하게 되자 돈줄은 순식간에 말랐다. 달러를 구하지 못한 은행들과 기업들은 부도 걱정에 하루하루 가슴을 졸였다.

당시 부도 확률이 높은 미국 주택담보대출에 우량상품을 섞고 AIA와 같은 대형 보험사의 보증까지 붙여 안전 등급의 투자 상품으로 꾸민 ‘메이드 인 월스트리트’ 파생상품이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세계적 투자은행의 영업사원들이 이 파생상품 설명서를 넣은 가방을 들고 시중은행을 돌며 영업했다. 판매하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상품 구조와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손실은 뻔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10년 전 금융사 투자 전문가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암호기술을 응용한 블록체인 기술에서 파생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잠재력은 크다.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분산된 데이터베이스이며, 비즈니스 측면에선 개인끼리 가치가 있는 자산을 주고받을 수 있는 교환 네트워크다. 정부 은행 신용카드사 등 제3의 기관이 개입하지 않아도 거래 사실 자체만으로 위·변조 등의 거래 검증이 가능해 금융이나 에너지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문제는 블록체인의 여러 응용분야 중 가상화폐에만 지나친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가상화폐 네트워크는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크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자체 가상화폐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대부분의 사설 가상화폐는 초창기 대마초 거래 사이트에서 쓰였던 것처럼 지하경제 화폐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가상화폐는 24시간 거래되면서 변동 폭이 무제한이지만 리스크를 미리 예견하고 피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 정도의 고위험 투자 상품은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원금 손실을 원치 않는 투자자라면 기웃거릴 곳이 못 된다. 그런데도 빚을 내서까지 투자한다. 금융대출 리서치회사인 렌드EDU가 전 세계 비트코인 투자자 672명을 조사했더니 22%가 빌린 돈으로 투자했다. 보수적 투자자라면 차라리 블록체인을 활용한 핀테크(금융기술), 에너지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게 산업도 일으키고 리스크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모든 투기는 ‘이번엔 다르다’는 착각에서 시작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파티가 끝나고 음악이 멈추면 누가 발가벗고 춤을 추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는 물론이고 20년 전 외환위기, 10년 전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거품이 빠지면 튤립은 알뿌리라도 남지만 가상화폐는 뭐가 남을까.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