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궁의 김장 담그기, 세자빈이 무-소금 등 직접 나눠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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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궁궐에서도 장을 담그고, 김치를 나눠 먹는 등 정겨운 풍경이 존재했다. 혜빈궁은 창경궁 경춘전에 머물며 100여 명에 이르는 궐내 식구들을 관리하고, 왕실의 각종 살림살이를 챙겼다. 문화재청·서울대 규장각 제공
“청연군주와 청선군주, 왕손 3명과 유모 등 20명에게 메주를 내렸다.”

1764년 2월 10일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빈궁(혜경궁)이 쓴 ‘혜빈궁일기’에는 이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다. 혜빈궁은 영조가 내려준 칭호로 정조가 어머니를 위해 지어준 혜경궁 이전까지 사용됐다.

혜빈궁일기에는 정조가 어머니 혜빈궁에게 5일에 한 번씩 문안인사를 드린 것 등 각종 일상의 기록이 가득하다.
이 기록에 따르면 간장을 담글 주재료인 메주는 조선시대의 핵심 식재료로 왕궁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정조의 여동생인 청연 청선군주뿐 아니라 궁녀와 유모 등 궁궐 내 식구들에게 알뜰하게 나눠준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8월 10일 김치 재료를 나눠줬다.(중략) 10월 12일 소금을 진상받았다.”

조선의 왕궁에서도 김치는 빠질 수 없는 반찬이었다. 김장철을 맞아 무와 소금 등 재료를 챙겨 나눠주는 것 역시 세자빈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그동안 조선 왕궁 여성들의 일상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기록의 나라’로 불릴 만큼 철저한 기록문화를 자랑하는 조선이지만 여성들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순종비 순정효황후가 쓴 ‘내전일기’ 등이 남아 있지만 단순 출입자 명단만 나와 있어 가치가 떨어진다. 반면 1764년부터 2년여의 기록이 남아 있는 혜빈궁일기는 당대 궁궐 내 여성들의 삶을 자세히 밝혀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최근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사진)가 이 일기를 분석한 ‘혜빈궁일기와 궁궐 여성 처소의 일상’이란 논문을 연구모임 ‘문헌과해석’에서 발표했다. 정 교수는 “이두식 한문에 한글 필사체까지 섞여 있어 해석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했다”라며 “궁궐의 세시와 풍습 등 다양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자료”라고 밝혔다.

혜빈궁의 환갑연을 그린 봉수당진찬도의 일부.
당시 혜경궁이 거주하던 창경궁 경춘전은 100여 명의 인원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과 같았다. 수석 보좌관격인 승언빗내관을 필두로 차석 보좌관 겸 음식 재료 검수 등을 담당한 섬니내관, 각종 잡역을 담당한 내관 등이 상주했다. 이 밖에도 5품 상궁을 비롯해 시녀, 여종, 궁비 등 100명이 넘는 인력이 경춘전을 수시로 드나들며 혜경궁의 시중을 들었다.

혜빈궁의 일상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문안 인사였다. 날마다 임금과 왕비에게 올리는 축일(逐日), 일차(日次)문안을 드렸고 임금이 궁 밖으로 나갈 때면 출궁문안, 큰 행사 후 다음 날 인사를 하러 가는 익일(翌日)문안 등 문안 종류만 10여 개에 달했다. 반대로 문안을 오는 관료나 친족도 많았는데 이들에겐 반드시 음식을 해주거나 비단 주머니 등을 선물로 챙겨줬다.

정겨운 명절 풍경도 세세하게 나타나 있다. 5월 단오에는 부채와 옥추단(구급약)을 궁궐 식구들에게 선물로 나눠줬고 11월 동짓날에는 팥죽과 숯 땔나무 등을 내관들에게 내려주기도 했다.

정 교수는 “왕궁 역시 다양한 사람이 거주하는 인간적 면모를 보인 곳”이라며 “그동안 조명받지 못한 궁궐 풍속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