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복수를 할거야” 아우슈비츠 노예가 남긴 메모 해독

phoebe@donga.com2017-12-05 16: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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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Z-MUENCHEN.DE
유대인 대학살을 소재로 한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한 장면. 동아일보 DB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을 죽인 나치에게 복수하기 전에 나는 죽을 수도 없었다.”

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은 나치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수감자가 1944년에 남긴 메모가 해독됐다고 영국 BBC 등 외신이 최근 전했습니다. 디지털 이미지 처리 기술 덕분인데요.

메모를 남긴 사람은 그리스 유대인인 마르셀 나자리(Marcel Nadjari)입니다. 그는 동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호송해야 했던 나치 수용소 작업부대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 일원이었습니다. 이들은 가스실에서 죽은 동포의 시체를 태우고, 여자들의 잘린 머리카락과 금니를 모으는 일을 했습니다.

1944년 26살이던 나자리는 복수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나자리는 동료 유대인들로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치에 점령된 남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는 메모 곳곳에 복수하겠다는 글을 적었습니다.

“종종 다른 사람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싶었지만, 항상 복수심이 나를 막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의 죽음에 대해 복수를 원했다.”

그가 남긴 노트 메모에는 매일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가스실에 수감된 방법이 묘사돼 있었습니다. 그는 “정어리처럼 포장된”이라고 적었습니다.

“사람들을 벌거벗게 해 가스실에 넣는데, 약 3000명이 들어갔을 때 문을 잠그고 가스를 투입한다. 약 6~7분 고통 후 그들은 죽었다. 우리는 그 무고한 여자들과 아이들의 시신을 가져다 태웠다.”



아우슈비츠 노예 마르셀 나자리(Marcel Nadjari)는 동료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호송해야했다. ‌출처=파벨 폴리안
그는 나치 SS 부대가 자신들까지 죽이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1944년 11월 13장 분량 원고를 보온병에 넣고 가죽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귀중한 메모는 폴란드 숲에 묻혔고 36년 만인 1980년에 발견됐습니다. 나자리가 사망하고 9년 후였죠.

기적적으로 나자리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고 전쟁 후에 그는 결혼해 1951년 아내, 아들과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그는 딸까지 낳고 살다가 1971년 사망했습니다. 전쟁 전 테살로니키에서 상인으로 일했던 그는 뉴욕에서는 재단사로 살았습니다.

축축한 숲 토양에서 발견된 나자리의 기록은 글씨가 지워져 있었죠. 발견 당시에는 10% 정도만 해독됐습니다. 이것도 러시아의 역사가 파벨 폴리안이 당시 기술을 사용해 겨우 해독한 것입니다.

지난 11월 독일 뮌헨 근대역사 연구소는 폴리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나자리의 메모를 비롯해 다른 4명의 존더코만도 일원이 남긴 기록을 연구 중입니다.

폴리안은 아우슈비츠 박물관 자료실에서 나자리의 원고를 스캔 받은 후 러시아의 젊은 IT젊은가 알렉산더 니키티에프와 접촉했습니다. 니키티에프가 어도비 포토샵의 디지털 이미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변색된 텍스트를 복원하는데 1년이 걸렸습니다.

폴리안은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사망자에 대한 나자리의 추정치는 140만 명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나치가 1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죽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약 110명의 존더코만도 일원이 생존했으며 대부분은 폴란드계 유대인입니다. 지옥의 공포를 목격한 이들은 이를 잊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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