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앞 자해하며 “나 죽으면 네 탓”…민원인 폭언 오죽했으면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대화 중에 죄송합니다. 지금 민원인과 대화하는 공무원도 민원인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중략) 아울러 상담공무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시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대화내용은 민원인과 직원의 인권보호를 위해 녹음되니 언성을 낮춰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흥겨운 음악이 깔리며 친절한 목소리로 녹음된 안내 음성이 나옵니다. 약 50초 동안의 이 ‘반(半) 요청 반 경고’는 송파구 사회복지과 상담실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민원인과 상담을 하는 공무원이 벽에 달린 ‘예의지킴이 벨’을 누르면 스피커에서 나옵니다. 이 벨은 도대체 왜 설치된 것일까요.

송파구 A 주무관은 1월 민원인에게 기초생활보장급여가 중단됐다고 알렸더니 “네 집을 알고 있으니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을 들었습니다. 민원인은 구청에 수시로 찾아와 A 주무관에게 “너 때문에 자살할 거야”라며 폭언을 했습니다. B 주무관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칼을 들고 구청을 찾아오거나 벽에 머리를 ‘쿵쿵’ 찧는 민원인에게 시달리다가 마음의 병이 난 것입니다.

이런 악성 민원인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와 폭력적 언행을 가하기 일쑤입니다. “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며 목청 높이는 민원인들로 인해 직원들이 정신적 충격을 받는 일이 이어지자 송파구는 지난달 28일 예의지킴이 벨을 설치했습니다. 먼저 상냥하게 인사를 해서 ‘흥분한 민원인에게도 시간을 줘서 숨고르기를 할 수 있도록’ 한 뒤, ‘더 계속하면 처벌 받을 수도 있다’고 설득한다는 전략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민원인들이 1분 가까이 가만히 앉아 자동안내 음성을 들으며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오죽하면 ‘녹음된 도움’이라도 받고 싶어 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서로 조금이나마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요.

사회복지과 한 직원은 “벨을 도입하고 다행히 아직 써볼 일이 없어서 실제 효과는 모르겠다”면서도 이렇게 덧붙이며 웃었습니다. “웬만하면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