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줄넘기 1만개씩 하며 ‘살인자의 얼굴’ 만들어냈죠”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주연 설경구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역할 “배우 인생, 새 캐릭터 찾는게 답”
6일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감독 원신연)의 주인공 병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다.

김영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병수는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또 다른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딸 은희(김설현)를 지켜야 한다. 병수를 연기한 배우 설경구(49)를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스크린 속 설경구는 잔혹함과 부정(父情), 범죄자의 지능적인 모습과 환자의 흐릿함을 비롯해 모순적인 여러 얼굴을 오간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불과 50분 동안 설경구는 ‘캐릭터’라는 단어를 29번, ‘얼굴’이라는 단어를 30번 사용했다.

―중량감 있는 배우들도 영화마다 연기가 다 엇비슷하다는 불만이 관객들에게서 나온다. 본인 평가는….

“나도 꽤 오래 그러고 살았다. 그러다가 반성을 하다 만난 게 ‘살인자의 기억법’하고 ‘불한당’이다. 이 영화부터 ‘이 캐릭터는 어떤 얼굴을 갖고, 어떤 외형으로 인생을 살았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특수분장은 거의 없이 노인 역을 했다.


“자칫 부자연스러울 것 같아 배제했다. 그러다보니 선택할 게 얼굴에 기름기를 빼고 실제로 늙는 방법밖에 없더라. 매일 줄넘기를 1만 개씩 했다. 병수가 ‘살인의 습관’이 있는 것처럼 나는 ‘줄넘기의 습관’이 있다.”

―촬영 중 힘들었던 건….

“목을 조르고 졸리는 연기가 공포였고, 무서웠다. 한 번은 목을 졸리다 다리 힘이 빠지면서 쓰러져 기절 직전까지 가기도 했고, 조를 때는 상대 배우가 다칠까 봐 무서웠다. 살인자인데 안 조를 수도 없고….”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작품 설명은 먼저 들었고, 출연하겠다고 한 뒤 원작소설을 읽었다. 무서운 속도로 읽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의 망상을 함께 겪은 것 같았다. 영화는 주인공 병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바꿨다.”

―완성된 영화 시사를 본 소감은 어떤가.

“내 연기만 봐서, 전체적인 흐름은 못 봤다. 내 연기의 사소한 것들이 거슬려서 두 시간 동안 괴로웠다. 소설은 한번에 굉장히 스피디하게 읽은 거 같은데, 영화는 내 생각보다는 천천히 갔다.”

―배우로서 자연인으로서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제 한국 나이로 쉰 살, 지천명(知天命)이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맞다. 그래도 20여 년 배우라는 한 직업을 하고 있으니 나는 복 받았다. ‘천명’까지는 아니고… 계속 새로운 캐릭터를 찾는 게 답인 것 같다. 고민 안 하고 만든 캐릭터는 정말 고민 없어 보인다. 새로운 얼굴을 찾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