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반지하 빌라 살다 3층으로 이사하니 햇빛이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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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시인 “절망 붙들고 사는 앨리스들 보듬고 싶어”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손에 든 신현림 시인이 갤러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자신이 살아온 공간 등을 찍은 작품 앞에 서서 웃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햇빛이 정말 찬란하더라고요. 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겨우 한숨을 돌린 것 같아요.”

8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민음사)를 낸 신현림 시인(56)은 환한 표정으로 한동안 햇빛 이야기를 이어갔다. 10년간 살던 반지하 빌라에서 지난달 연립주택 3층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홀로 키우는 딸은 고등학생이 돼 마냥 보살펴야 하는 아이가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가 됐단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최근 시인을 만났다. 사진가이기도 한 그가 찍은 작품을 모은 ‘반지하 앨리스’사진전(13일까지)이 열리고 있었다. 새 시집에서 시인은 반지하 빌라에서 살던 경험과 경제적 어려움 등 모진 세상살이에 대한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생의 의지를 놓지 않는다.

“반지하에서는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이불이 늘 축축했어요. 마치 알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한데 시로 써 놓고 보니 불행이 기회가 된다는 걸 깨달았죠.”

시인은 ‘…햇살 넘치는 하루가 너무나 그리워’(‘광합성 없는 나날’)라고 몸부림치고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된다/가난의 힘은/그래도 살아가는 것이다’(‘가난의 힘’)라고 읊조린다. 그럼에도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나는 자살하지 않았다1’)며 일어선다.

“20대에 대학에 떨어지고 유급을 당하면서 내 삶이 남들과 다른 이유가 뭔지, 그 의미를 찾으려 발버둥쳤어요.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등을 낼 때는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경향이 강했죠. 한데 나이를 먹으니 여유를 갖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코끼리가 되기 전에’는 이런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세월은 내 발을 코끼리 발처럼 두툼하게 만들었다/…너도 코끼리가 되기 전에 할 일은/살아있음에 고마워하기/바람 부는 땅에 입맞춤하기’라며 풍요롭게 나이 드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촛불 시위, 세월호 참사 등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의 끈도 놓지 않는다.

“혼자 배부르고, 혼자만 알고 가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저마다 절망을 붙들고 사는 앨리스들을 보듬어 주고 싶어요.”

그림도 그리고 미술과 시, 에세이를 결합한 책을 꾸준히 내는 등 전방위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는 예술은 결국 서로 다 통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시의 정신은 모든 예술의 뿌리예요. 렌즈를 통해 본 풍경도 시적일 때 가장 아름답거든요. 내 속에서 무언가를 계속 길어 올릴 때 제일 행복해요. 큰 안목으로 사랑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