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2 17:00

드립 학원 졸업생, “출근길 ‘피식’하게 하는 그림 그리고파”

동아닷컴
에디터 동아닷컴|
무엇이든 그려준다는데 나도 댓글 달아보자
9년 차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는 SNS와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이하 ‘무엇이든’) 만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댓글에서 얻습니다. 독자들이 ‘월요일 아침에 회사 가기 싫은 상황 그려주세요’, ‘제 침대가 시험기간에 저한테 하고 싶은 말 그려주세요’ 같은 댓글을 달면 이를 만화로 그립니다. ‘이걸 어떻게 그릴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맛보기로 몇 편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센스 넘치는 답변 덕분에 키크니 작가의 계정은 14만 명 이상이 팔로우 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런 드립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아이디어의 원천을 물어봤습니다.

“드립력을 키우려고 특별히 노력을 하진 않고요. 원래 사람들 웃기게 하는 걸 좋아해요. 장난기도 많고요. 또 제가 주로 해온 업무가 교재 삽화 그리기라 어려운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데 익숙해요. 어떻게 쉽게 전달할지 고민을 하는 일을 8~9년 하니까 표현력이 자연스럽게 는 것 같아요.”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키크니 작가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따뜻한 감성입니다. 작가는 ‘학업, 취업, 직장생활, 육아 스트레스 관련 댓글이 많다’고 합니다. 어떤 독자는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죽은 반려동물이 하늘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려달라고도 한다는데요. 다소 난감할 수도 있는 요청이지만 어떻게 그려낼지 깊게 고민하고 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사연에) 제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봤는데 되게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심란하고 가슴 아픈 사연에 저도 같이 슬퍼져서 너무 진중하게 다루거나, 억지 감동을 짜내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몇 번씩 검열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그리는 게 괜찮을지 자주 검수도 받고요. 제 그림에 누구 하나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키크니 작가는 마이크 마이웨이 행사(부산 스페이스 펀에서 열리는 강연 행사로 자신 만의 독특한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에 연사로 초청되어 일러스트레이터의 삶을 전했다. 마이크 마이웨이 포스터.
사진 출처: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키크니 작가의 작업실 모습. 사진 출처: 키크니 작가 제공
‘키크니’ 작가는 본인을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소개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그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다’ 연재 외에도 많은 일을 혼자서 해내는데요. 출판사 외에도 다양한 업의 회사와도 협업합니다. 최근에는 강연 행사의 연사로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모두 ‘그림’이라는 무기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단순하게 말하면 그림쟁이지만 업무는 광범위해요. 그래서 제가 어떤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작가님들이 저와 같은 일을 하는 게 아녜요. 인스타툰 ‘무엇이든’이 화제가 되기 전에는 주로 그림책 작업이나 학습지 삽화를 그려왔어요. 주로 출판사와 작업을 했죠. 만화가 사랑받고 나서부터는 연재하던 걸 책으로 엮어 만들기도 하고, 기업 광고 영상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예전과 다른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 첫 번째 만화. 사진 출처: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최근에는 많은 작가들이 SNS를 통해 본인의 작품을 알리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 작가는 대단한 일을 해보려고 SNS를 시작한 건 아니라 합니다.

“9년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다 작년에 번아웃 됐어요. 아프기도 했고요. 일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들어서 외주 계약도 파기하고 매일 뒷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몇 개월간 쉬는데 전념했어요. 그러다가 ‘낙서라도 해보자.’해서 시작한 게 SNS에요. 그동안 일적으로만 그림을 그렸으니까. 별 기대 없이 첫 만화를 올렸는데 댓글이 달리는 게 좋았어요. 지금까지 출판사와 작업을 해왔으니까 제 작업물이 평가받을 일이 없잖아요. 그런데 만화는 반응을 빨리 확인할 수 있어서 색다르더라고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1화. 사진 출처: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무엇이든’ 만화도 감사함을 보답하기 위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독자와 더욱 소통하고 싶어 나온 아이디어라는데요.

“댓글이 가장 큰 에너지가 됐어요. 힘들었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보답으로 출근길에 한 번이라도 더 피식할 만한 만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림이 힘들어 무너졌는데 그걸 다시 그림으로 극복한 게 모순적이면서도 신기하네요.”
직장인 친구와의 대화 편. 사진 출처: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작가는 ‘프리랜서만큼 자기관리에 소홀하면 쉽게 무너지는 직업이 없다’며 직장인과는 다른 고충이 있다고 합니다.

“작업은 기본이고 일정 조율, 협상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해야 해요. 그래서 피로감도 크고 외로움과도 싸워야 하죠. 외주 계약서를 쓰지 않아 돈을 떼인 적도 있어요. 작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을’ 취급을 하는 기업도 있고요. 이쪽 일을 오래 하려면 체력 관리도 해야 하고 요구할 건 확실히 요구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하지만 남의 일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큰 장점이에요. 일이 많이 들어오면 직장인 보다 많이 벌 수도 있고. 집중이 안 될 때는 환경을 바꿔가면서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지난주에는 제주도에서 여행하며 작업했어요.”
사진 출처: 키크니 작가 인스타그램(@keykney)
작가는 자신의 만화를 통해 ‘사람들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한 초등학생에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그 직업을 갖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며 웃었습니다. 작가와 같이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어보았습니다.

“마인드요. 그림보다 마인드가 훨씬 중요해요. 그림은 오래 하면 어차피 늘어요.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누구나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는 있지만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직업에 대한 자존감이 낮다면 이 일을 오래 하긴 어려워요.

“임금 협상을 어려워하는 작가들이 많아요. 돈 이야기를 쑥스럽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떳떳하게 요구할 건 요구해야 기본적인 대접은 받으면서 일할 수 있어요. 그런 걸 어려워하면 손해 보는 건 결국 본인이거든요. 프리랜서는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까 스스로가 똑 부러지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런 요구를 못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어요.”

작가는 현재 신생 플랫폼에서 웹툰 연재 계약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합니다. 또한 ‘무엇이든’ 만화도 출판 준비를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독자분들과 계속 소통하고 싶다’며 ‘댓글과 그림으로 장난치면서 노는 게 행복하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저는 댓글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고, 독자분들은 제 만화를 보고 잠깐이나마 웃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지금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요.”

기획·제작 동아닷컴 인턴기자 김나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