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나은 ‘소녀들은 뭐든 할 수 있다’ 온라인 ‘발칵’…男女 대립 현주소

yspark@donga.com2018-02-14 07: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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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손나은 인스타그램 
“GIRLS CAN DO ANYTHING (소녀는 뭐든 할 수 있다)”

그룹 에이핑크 멤버 손나은의 스마트폰 케이스에 씌어있던 문구다. 손나은은 13일 이 케이스를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페미니스트' 의혹이 불거지자 삭제했다. 언뜻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이 문구는 어떻게 논란을 키우는 불씨가 된 것일까.

이유는 온라인에 ‘남혐’ ‘여혐’ 논쟁이 들끓으며 일부 누리꾼이 더 이상 ‘페미니스트’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때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된장녀’라는 신조어가 인터넷에 유행하기 시작한 때다. 2006년 동아일보는 “자기 치장에 몰두하고 고가품을 선호하며 서양 문화를 추종하는 허영에 찬 20대 여성을 가리키는 ‘된장녀’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에는 허영에 물든 사회의 단면을 지적했다는 주장과 근거 없이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왜곡된 인터넷 문화라는 반박이 충돌했다.

‘된장녀’는 곧 ‘여성으로서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며 의무는 지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한국 여성’을 가리키는 ‘김치녀’로 발전했다. 이 밖에도 ‘맘충’ ‘김여사’ 등 특정 여성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말이 등장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칭해 온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해 여성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은 책임을 전가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놀랍게도 그 대상은 ‘여성’이었다”며 “그게 가능해진 건 대한민국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터넷 강국이어서였다. 일자리가 없어서 남아도는 시간을 한국 남성들은 여성을 욕하는 데 썼다. 인터넷에는 여성을 욕하는 글이 쏟아졌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먹으면 된장녀가 됐고, 남자를 만났을 때 더치페이를 안하면 ‘김치녀’라고 욕을 먹어야 했다”고 썼다.

서민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반발하는 남성들도 많이 있다.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 남자에게만 부과되는 경제적 책임이 너무 크다며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이다. 또 어떤 이들은 ‘된장녀’ ‘김치녀’ ‘맘충’ ‘김여사’는 특정한 일부 여성들만을 지목하는 단어라 문제 될 것이 없으며, 여성 혐오적 성격도 없다고 주장했다. ‘개념녀’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스스로에게 자기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게 하는 단어”라는 반박도 있었다. 온라인에서 남성과 여성의 대립은 이때부터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폭발’하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지난 2015년 8월 ‘메르스 사태’였다. 페미니즘 사이트 ‘메갈리아’가 등장한 때다.

메갈리아가 어떻게 등장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메르스 사태 당시 메르스에 감염된 한 한국 여성이 홍콩에서 격리 치료를 거부했다는 소문이 돌며 여성 혐오 관련글이 쏟아지자, 일부 여성 누리꾼들이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 이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는 설이 돌고 있다. 메갈리아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혐오와 차별을 되돌려주겠다며 ‘미러링’을 표방했지만 현재는 회원들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그러면서 보다 극단적인 성향의 회원들이 떨어져 나오며 ‘워마드’가 탄생했다. 워마드는 아예 대놓고 ‘여성 우월주의’ ‘남성 혐오’를 주장하는 곳이다. 워마드는 남성회원이 주를 이루며 편향된 정치색과 여성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몇 차례 도마에 오른 바 있는 ‘일간베스트(일베)’와 비교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온라인에 넓게 퍼지며 ‘여혐’ ‘남혐’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김치녀’ ‘김여사’에 대항하는 ‘한남충’ ‘개저씨’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어느 커뮤니티 회원인가를 놓고 사상 검증까지 잇따랐다. 지난해에는 한 대학생이 페이스북 워마드 관련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기업에서 채용이 취소됐던 사연이 일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같은 해 한 여성 성우는 ‘메갈리아’의 이름을 단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판매한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만으로 역풍을 맞았다. 티셔츠에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 (소녀에게는 왕자님이 필요 없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게임회사 넥슨의 한 게임 캐릭터 연기를 담당했던 그는 더 이상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지 못하게 됐다. 게임의 주 이용자층인 남성의 거센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기존에 연기했던 목소리는 게임에서 모두 삭제됐다.

온라인에서 남녀 간 갈등은 점점 심해지는 양상이다. 이 가운데 ‘김치녀’ ‘된장녀’에게 향했던 비난의 화살은 이제 ‘페미니즘’ 자체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이 같은 비난을 펼치는 이들은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로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뷔페미니즘(뷔페+페미니즘·여성으로서 유리한 점만 골라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한다는 뜻)’ ‘꼴페미(꼴통+페미니즘)’ 등 페미니즘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단어도 등장했다.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일부 여성회원 위주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극단적인 ‘남혐’도 확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온라인의 사상 검증도 나날이 심해지는 모습이다.

손나은의 스마트폰 케이스에 적혀 있었던 “GIRLS CAN DO ANYTHING (소녀는 뭐든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논란이 된 이유다. 그 자체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말처럼 해석됐고, 일부 누리꾼은 더 이상 페미니즘 그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그 동안 페미들이 얼마나 ‘꼴통 짓’을 했으면 연예인이 ‘페미’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생기냐”고 했다. 다른 누리꾼도 “요즘의 한국 상황을 고려해 저 문구를 생각해보면 ‘여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보다는 ‘여자는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라는 뉘앙스가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비하로 쓰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 “피해의식 대단하다. 폰케이스에 페미니즘이라고 써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논란이 되다니. 누가 보면 나치 표식이나 전범기 단 줄 알겠네” “페미니스트가 논란거리냐” “페미니즘을 대변하는 문구라서 논란? 페미니즘은 나쁜 것이 아닌데 말이지”라며 페미니즘의 의미를 원래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손나은이 실제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너무 심한 사상 검증” “요즘 남녀 간 갈등으로 서로 예민한 것은 알지만 이건 좀 너무 앞서나갔다”라며 이번 일이 논란거리 자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손나은의 스마트폰 케이스에 적힌 문구는 온라인의 남녀 간 갈등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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