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의 마법… “월급은 적어도 행복의 백만장자”

동아일보
에디터 동아일보|
[2020 행복원정대/청년에게 희망을]<4> 덕업일치를 꿈꾸는 청년들
서울 목동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바리스타 박솔탐이나 씨는 “덕업일치를 했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남들보다 더 공부해야 하고, 경력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솔탐이나 씨 제공 
임재현 씨(30)는 세계 각국을 돌며 패션쇼에 참가한 모델들의 거리 사진을 찍는 사진 전문가다. 하루에 2만 명이 방문하는 인기 블로그를 운영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부도난 회사에서 쫓겨난 실직자였다. 임 씨는 실직한 뒤 거리에서 패션모델들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임 씨는 “하루라도 빨리 이 적성을 발견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20대 청년 10명 중 8명은 임 씨처럼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는 ‘덕후(마니아)’의 행복을 꿈꾼다. 하지만 팍팍한 취업난 속에서 ‘덕업일치’(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같다는 뜻의 청년들의 신조어)의 꿈은 신기루에 가깝다.

○ 꿈이 밥이 되는 ‘덕업일치’ 행복

동아일보 2020행복원정대 취재팀과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20대 8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9%는 “취미·적성에 맞는 직업(덕업일치 일자리)을 찾는 것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답했다. 방송국 PD를 꿈꾸다 종이비행기 날리기로 명성을 얻어 회사까지 세운 위플레이의 이정욱 대표(30)는 “사람들은 ‘꿈이 밥 먹여 주냐’고 이야기하지만 ‘꿈을 포기하면 밥이 꿈을 살려 주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말한다. 덕업일치가 일을 통한 행복을 느끼게 해줬다는 것이다.

문제는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적성과 취미를 살려 취업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취미와 적성을 살려 직업·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 정도(51.8%)에 불과했다. 청년들은 ‘낮은 임금’(45.9%)과 ‘불확실한 미래’(32.5%) 등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주목받는 로봇 스타트업 중 하나인 럭스로보 대표 오상훈 씨(27)는 이 같은 현실적 난관을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꿈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로봇 박사’를 꿈꾸던 오 씨는 고등학교 때 로봇 동아리 활동을 하며 여러 로봇대회에서 수상했다. 광운대 로봇학부를 졸업하고 주저하지 않고 창업을 선택했다. 오 씨는 “부모님과 친구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인생을 걸지 말라’고 말렸지만 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씨는 2013년 럭스로보를 창업하고 7번의 도전 끝에 올해 처음 매출을 올리고 수출도 시작했다.

○ ‘불행에 대한 보상’보다 꿈을 지원해야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불행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욕구가 강해지지만 일에 만족하면 물질적 보상에 덜 민감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급여 등만 보고 대기업 입사에 매달리다가 취업 후 일에 재미를 붙이지 못해 퇴사하는 신입사원이 있는가 하면 급여가 낮은 중소기업 등에서도 적성을 찾아 행복을 느끼는 청년이 있다. 서울 목동에서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바리스타 박솔탐이나 씨(31)가 이런 경우다. 박 씨는 방송국 취업을 준비하다가 커피가 좋아 진로를 바꿨다. 대학도 바리스타과로 편입했다. 박 씨는 “불확실한 미래와 낮은 보수에 실망을 할 때가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일찍 찾아 관련 지식을 꾸준히 축적한 ‘덕후’가 덕업일치의 꿈을 이루기 쉽다. 2013년 CJ E&M에 입사한 음악콘텐츠사업부문 전략마케팅팀의 김해나라 대리(29)는 초등학생 때부터 그룹 ‘god’의 열성 팬이었다. 앨범을 사 모으며 음악 덕후의 세계에 ‘입덕’(덕후가 된다는 뜻)했다. 김 대리는 회사 입사 뒤 ‘god’ 홍보를 담당하면서 덕후 세계에서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꼽힌다.

청년들은 “현재 교육 제도에서는 재능과 적성을 일찍 발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학교에서 진로와 적성을 일찍부터 탐색할 기회를 더 마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는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경험하고 전문 분야 취업을 지원하는 특화된 고용정보 서비스나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적은 것도 문제다. 이번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정보 공유 및 멘토링’(39.2%) ‘정부 지원’(25.2%) ‘관련 교육시설 확충’(24.4%)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김동욱 creating@donga.com·김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