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무슨 생각해?”

celsetta@donga.com2017-02-08 11: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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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나혼자산다' 이수경
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글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태그는 사진작가 박경인 씨(인스타그램 @kyungin_c)가 출간한 사진집 ‘자취방’이 화제가 되면서 그 반발로 생겨났는데요.

여성의 자취방을 테마로 했다는 박 작 사진집에는 욕실, 침대, 소파 위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야릇한 옷을 입은 여성들이 뇌쇄적 눈빛을 던지는 사진들이 주를 이룹니다. 수영복을 입고 옛날식 ‘통돌이’ 세탁기 안에 들어가서 묘한 시선을 던지는 여성 사진도 있습니다.

박 작가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할 의도는 없었고, 집에서 편하게 있는 모습을 예쁘게 담고 싶었다”고 해명했지만 여성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집에 혼자 있는데 목 늘어난 티셔츠에 헐렁한 고무줄 바지 따위를 입고 있지, 망사스타킹에 레이스 란제리를 입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본 드라마 '호타루의 빛'중 한 장면. 주인공 아메미야 호타루(아야세 하루카 분)는 밖에서는 깔끔한 모습이지만 자취방에서는 추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드러누워 맥주와 오징어 안주를 즐기며 뒹굴대는 '건어물녀'이다.
이 사진집에 반감을 가진 여성 누리꾼들은 지난 1일부터 “현실 여자의 자취방은 이렇지 않다. ‘자취하는 여자’라는 말을 들으면 불순한 상상부터 하는 남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사진들 아니냐. 남자 방이나 여자 방이나 다 사람 사는 곳이다”라며 ‘진짜’ 자취방 사진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여성의 자취방에는 먹다 남은 음료캔, 아침에 바쁘게 나가느라 대충 쌓아둔 옷가지들, 책과 잡동사니가 잔뜩 쌓인 책상 같은 것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누리꾼들은 사진과 함께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매일매일 느껴야 하는 일상적인 불안감도 공유했습니다. 개중에는 거의 괴담 수준으로 섬뜩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새벽에 누가 내 자취방문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문 앞에 CCTV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이나 흔들다가 갔다”

‌“귀가할 때마다 집 안 구석에 누가 숨어있지 않은지 경계하며 들어간다.”

“샤워하고 나왔는데 열린 창문 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옆집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이후 여름에도 창문을 꼭 잠그고 샤워한다. 혼자 있을 때 샤워하는 것 자체가 무섭다.”


“늦은 밤, 밖에서 남자 두 명이 문을 마구 두드리며 ‘불 났으니 빨리 나오라’고 소리질렀다. 깜짝 놀라 당장 뛰쳐나가려 했는데, 다른 집들에 문 두드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해서 119에 전화해 보니 화재신고는 없었다고 했다.”

“아는 언니가 자취하며 공부하느라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는데, 배달원들 사이에서 예쁜 여자가 혼자 산다고 소문나서 성폭행 당했다. 아빠라는 사람은 경찰서에 오자마자 딸 뺨을 때렸다고 한다.”

“천장에 물이 새서 주인집에 얘기해 한참 공사를 했다. 하루만에 끝나는 공사가 아니라 수리공 아저씨들 2~3명이 며칠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그 중 한 아저씨가 혼자 오더니 나에게 ‘아가씨, 데이트하자’며 희롱했다. 그 사람은 50대 정도 되어 보였다. 덩치 큰 교회 남동생들을 데려와 겁줬더니 수작 걸지 않고 조용히 돌아갔다.”

“현관문이 닫히기 직전에 어떤 남자가 따라들어왔다. 남자는 바지를 벗고 있었다.”



‌안락하고 편안한 쉼터가 돼야 할 ‘내 방’에서 오히려 불안을 느끼는 여성들. 도어락 번호를 누르기 전 주변에 누가 없는지 확인하고, 옷소매로 도어락에 묻은 지문을 지우고 들어가는 여성들.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일부러 2인분씩 시키고, 배달이 오면 “어 아빠~ 내가 받을게~”라고 크게 외치며 나가는 여성들. 동성 친구와 함께 자취하면서도 남자 신발을 현관에 놓아두는 여성들.

2016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서울 전체 가구 중 15%가 여성 1인 가구였습니다. 그들은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불안을 늘 가슴에 품고 ‘자나깨나 몸조심’을 되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일부 네티즌은 “자기 방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도 위험하다. 창문 밖의 동네 풍경 같은 걸 단서로 진짜 거주지를 추적하는 남자들도 실제로 있다”며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남성임을 밝힌 한 네티즌은 "남자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남자로 태어난 게 미안해 질 정도다. 남자로서 상상조차 못 해 본 지옥이 펼쳐져 있다"며 모든 여성이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태그를 공유한 여성 네티즌들은 “왜 하필 '자취방' 인가. 자취방은 누군가가 먹고 자고 사는 공간이다. 타인의 성적 판타지를 채워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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