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C로는 감기 못 막는다?

동아사이언스
에디터 동아사이언스|
올겨울 호흡기질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도 전 독감이 대유행해 조기방학을 하는 학교가 있었을 정도다.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며 연신 콜록대는 사람과 마주하다 보면 ‘이러다 감기 옮는 거 아냐’ 내심 걱정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겨울이면 늘 듣게 되는 ‘감기 예방하려면 비타민C를 섭취하라’는 정보가 새삼스럽다. 큰돈 드는 것도 아닌데 예방만 된다면 비타민C 보충제를 안 먹을 이유가 없다. 보통 이런 제품의 1회 복용량에는 비타민C가 500~1000mg 들어 있는데, 이는 하루 권장량 100mg의 5~10배나 된다. 비타민C야 많이 먹어도 별탈이 없을 테니 아예 과잉섭취하는 게 감기를 ‘확실히’ 예방하는 길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비타민C가 감기를 예방한다는데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런 효과를 내는 것일까. 최근에는 피부에 좋다며 비타민C가 잔뜩 들어간 화장품도 나오던데 비타민C는 정말 팔방미인일까. 그리고 권장량의 몇 배씩 과잉섭취해도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름은 무척이나 익숙하지만 정작 그 실체를 잘 모르고 있는 비타민C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자.
감기 예방 효과에 대한 의문
비타민C의 감기 예방 효과는 근거가 있는 얘기일까. 감기 예방을 의학적으로 바꿔 표현하면 몸의 면역력을 높여 감기바이러스가 침투해도 인체에서 증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비타민C의 항산화작용이 면역계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말인가. 실제로 면역세포의 비타민C 농도는 다른 세포에 비해 다소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비타민C와 면역력의 관계를 뚜렷하게 밝힌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물론 비타민C 때문이라는 걸 몰라도 감귤류를 먹어 괴혈병이 치료되면 그만이듯, 면역계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을 몰라도 비타민C 보충제가 감기 예방 효과를 보인다면 이를 안 먹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많은 연구를 종합한 결과 비타민C를 많이 섭취해도 감기 예방 효과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얘기가 나왔을까.

비타민C가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시기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5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20세기 최고 화학자라고 부르는 라이너스 폴링 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 교수는 이때 “감기부터 암, 심장질환까지 각종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은 비타민C”라며 “우리는 의학자와 권위 있는 영양학자가 권장하는 용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비타민C를 섭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링이 무턱대고 비타민C가 좋다고 떠들고 다닌 것은 아니다. 그는 1965년 몇몇 의학자가 비타민을 다량 투여하는 요법으로 정신질환이나 암을 치료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화학자 관점에서 이것이 비타민C의 항산화 작용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폴링은 감기 예방을 위해 매일 비타민C를 3000mg씩 먹었고 실제로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93세까지 장수했다.

저명한 과학자의 주장이다 보니 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지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비타민C의 감기 예방 및 치료 효과를 연구했다. 그 결과를 발표한 1975년 논문을 보면 비타민C 보충제를 먹을 경우 감기 증상이 다소 완화되고 투병 기간이 약간 줄어든다고 돼 있다. 그러나 곧 이 논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드러났고, 데이터를 다시 해석한 결과 감기 투병 기간을 줄이는 효과만 미미하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 진행된 여러 연구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다만 운동선수나 훈련병처럼 격렬한 신체활동으로 몸의 산화스트레스가 심한 사람은 비타민C 보충제가 어느 정도 감기 예방 효과를 발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편 진화 관점에서도 비타민C 과잉섭취가 우리 건강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은 포유류 가운데 예외적으로 스스로 비타민C를 만들지 못한다는 걸 보면 그렇다.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는 스스로 비타민C를 만들 수 있다. 아마 우리 조상도 몸에서 비타민C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진화 과정에서 그 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체내 비타민C 농도가 높을수록 건강에 좋다면 이 능력을 잃는 방향으로, 즉 건강에 불리하게 진화했을 리 있겠는가. 게다가 비타민C 합성 능력을 잃은 사람 수명이 기껏해야 15~20년 사는 개나 고양이보다 훨씬 더 길다.
진화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 조상은 언제 비타민C 합성 능력을 잃었을까. 포유류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 시점은 대략 6000만 년 전이다. 영장류 가운데 우리가 흔히 원숭이라고 부르는 종류(학술적으로는 직비원류라고 한 다)는 모두 비타민C를 만들지 못한다. 반면 여우원숭이처럼 딱 봐도 사람과 꽤 달라 보이는 종류(곡비원류)는 여전히 비타민C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영장류 진화에서 두 집단이 갈라진 시점이 약 6000만 년 전이다. 즉 오늘날 직비원류 종의 공통조상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 비타민C 합성 능력을 잃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생존이나 번식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가 존재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영장류의 먹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나무 위 생활에 적응하며 비타민C가 풍부한 잎과 열매를 주식으로 삼은 영장류에서 비타민C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고장 난 돌연변이체가 살아남았다. 어쩌면 이들은 몸의 자원을 다른 데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번식 경쟁력이 더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침팬지와 공통조상에서 대략 600만 년 전 갈라져 나와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어온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우리가 먹어온 음식으로 비타민C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즉 채소와 과일을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는 환경이라면 따로 비타민C 보충제를 챙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특히 귤이 흔한 겨울철에는 하루 귤 서너 개면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을 섭취할 수 있다. 귤에는 100g당 비타민C가 30~40mg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끼니때 김치 몇 조각만 먹어도 꽤 많은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는데 배추나 마늘에는 귤 수준으로, 고추에는 대여섯 배나 많은 비타민C가 들어 있다(물론 김치로 먹는 고춧가루 양이 많지 않겠지만). 아무튼 채소와 과일을 적당히 먹는 평범한 식단을 유지하면 누구나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은 가볍게 넘길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비타민C 섭취량은 권장량의 2배 가까이 된다.

물론 다른 영양소에 비해 비타민C는 과잉섭취에 따른 부작용이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장량의 50배인 하루 5000mg을 먹는다 해도 사람에 따라 속쓰림, 메스꺼움, 설사, 두통, 불면증을 경험하는 정도에 그친다. 하루에 보충제 한 알로 비타민C를 5~10배 과잉섭취해도 대부분 별다른 부작용을 겪지 않는다. 이렇게 많이 먹어봐야 어차피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 신장에서 걸러져 소변으로 배출될 뿐이다. 비타민C는 혈액으로 흡수된 뒤 30분 정도 지나면 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매일 귤 몇 개씩 먹는 게 비타민C도 섭취하고 귤 과잉생산으로 걱정인 농민들도 도와주는 길이 아닌가 싶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