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하나 직접 그려 콘티대로 촬영… 이래서 ‘봉테일’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6-11 1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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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어떻게 장면이 바뀌어야 될지 뼛속까지 알게된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그가 그린 섬세한 스토리보드는 스크린에 그대로 재현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기생충’에서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가 반지하에서 피자 박스를 접는 장면도 철저히 스토리보드를 따른 결과물이다. 빠르고 거친 스케치로 완성하거나 ‘옥자’처럼 포인트 색을 입혀 만화적 완성도를 높이기도 했다. 앤드크레딧·CJ엔터테인먼트·넷플릭스 제공
“감독님 콘티 안에는 모든 디테일이 그려져 있어요. ‘이미 모든 게 머릿속에 있구나’ 싶더라고요.”

영화 ‘기생충’에 출연한 배우 최우식의 말이다. 6월 9일 기생충이 개봉 11일 만에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봉준호 감독(50)의 작업 방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처럼, 스토리보드 안에 카메라 앵글, 동선, 배경 등 그의 디테일이 모두 담긴다. 컷만 나누는 게 아니라 핸드헬드(손으로 들고 찍기) 등 연출 느낌까지 스케치로 표현한다. 그는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년)부터 전문 작가들에게 맡기지 않고 시나리오와 콘티를 직접 작업해 왔다.



“스토리보드를 미리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서 현장에 못 나가거든요. 콘티 없이 현장에 가는 건 마치 바지를 안 입고 팬티만 입고 시부야 한복판에 서 있는 그런 느낌이죠.”

홍경표 촬영감독도 1000개 가까운 컷이 담긴 완벽한 콘티 덕분에 77회 차 만에 기생충 촬영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한 만큼 촬영 현장에서 겪는 시행착오도 줄었다. 표준근로계약서를 준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봉 감독은 찍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 편집본대로 찍는다. 집을 지으면서 ‘못 한 포대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못이 53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크리스 에번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동시에 (배우들은) 매우 자유로워진다. 마치 유치원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틸다 스윈턴)

배우들 입장에서 연기하기 한층 수월해지는 건 당연지사. 직접 그린 콘티를 만화책처럼 만들어 보여주고, 디테일한 설명이 이어진다. ‘마더’(2009년)의 김혜자, ‘옥자’(2017년)의 제이크 질런홀 등 연기파 배우들에게 직접 명연기(?)를 선보이는 일도 잦다. 기생충을 함께한 배우 장혜진, 이선균이 “모든 것을 맡기고 자판기 연기를 하고 싶었다” “가이드 봉준호가 이끄는 패키지여행”이라고 촬영 후기를 남길 정도.

그는 어릴 적 만화가를 꿈꿨던 ‘만화광’이었다. 외할아버지인 소설가 구보 박태원(1909∼1986)보단 국내 1세대 디자이너인 아버지 봉상균(1932∼2017)의 영향이 더 컸다고 한다. 외국 출장 때마다 아버지가 사온 그래픽 책과 서재에 놓인 화집들을 읽어온 그는 5세부터 만화를 그렸다.

2005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 서점에서 접한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는 결국 영화로 만들었다. 10대 시절 열광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1978년)에서 코난을 돕는 라나는 ‘괴물’(2006년)에서 세주(이동호)를 지키는 현서(고아성)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강원도 산골에서 미자(안서현)와 옥자가 교감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원령공주’(1997년)를 떠올리게 했다.




‘연세춘추’에 4컷 만화를 연재하던 시절, 그는 영화 동아리 ‘노란문’을 만들어 첫 단편작 ‘백색인’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연세춘추 캡처
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인 그는 군 전역 뒤 1993년 학보사 ‘연세춘추’에 4컷 만화와 만평을 1학기 동안 연재했다. 문민정부 초기 노동 현실, 대학생의 처지 등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장르 규칙을 따르지 않고 그 틈바구니로 사회 현실이 들어간다”는 봉 감독의 말처럼, 사회 비판적 메시지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영화 스타일과도 닮아 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