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바나나 속 감춰진 눈물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6-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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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내 고향 오키나와는 ‘태풍의 길’이라 불릴 정도로 매년 태풍피해가 심하다. 집 지붕과 담장을 처음 지을 때부터 시멘트로 고정하지만 태풍이 지날 때마다 피해는 속출한다.

우리 식구는 그해 바나나 수확량으로 태풍의 피해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제사용으로 정성들여 바나나를 키우셨다. 그런데 태풍 탓에 바나나가 채 익기 전 통째로 부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바나나에서 섬유질을 뽑아 기모노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 재료도 마찬가지로 부족했다. 한여름에 입는 마 같은 시원한 소재로 할머니가 즐겨 입으셨지만 지금은 귀해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나는 바나나를 간식으로 먹고 자랐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아내는 그것이 고급과일이었다고 말해 놀라웠다. 생일이나 어린이날에야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임신한 새언니 방에 감춰진 바나나를 얻어먹기 위해 온갖 시중을 자처했던 어린 시절을 얘기하곤 한다.

오늘날 흔히 먹는 바나나는 기원후(AD) 650년 아프리카에서 개량된 종이다. 원래 야생종은 씨가 크고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적었다. 먹다 보면 아주 작은 검정 씨를 발견할 수 있지만 씨로부터 자라는 과일은 아니다. 나무라 흔히 부르지만 다년생 허브로 생강과 먼 친척관계다. 아홉 달 정도 자라면 열매를 맺고, 열매가 달린 줄기는 잘라낸다. 그 주위에 새 줄기가 나와 모체와 똑같은 종이 자라난다. 세계 시장에 깔려있는 캐번디시 종은 지난 60년간 유지해 왔지만, 1960년대 이전 그로미셸 종은 해충 또는 질병에 의해 사라졌다.

150개국에서 200여 종의 바나나가 자라나고 있는데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우리 식탁에서 자주 보는 크고 긴 것은 캐번디시. 몽키 바바나는 짧고 작은 것으로 오키나와 바나나도 이 종류다. 마지막으로 플랜틴 바나나는 전분이 많고 딱딱해 감자 같은 느낌이다. 총생산의 약 80%가 플랜틴 종으로 파란 껍질을 벗겨낸 후 얇게 슬라이스 해 그대로 말리거나 튀겨 먹는다. 또 통째로 튀기거나 구워 메인요리에 곁들인다. 타코, 아보카도, 칠리 살사와 함께 통돼지구이에 곁들여 먹으면 최고의 만찬이 된다.


바나나의 원산지는 말레이시아다. 약 1만 년 전에 생긴 최초의 과일로 추정하고 있다. 바나나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노예매매다. 포르투갈 항해사들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바나나를 발견했다. 16세기 브라질을 중심으로 사탕수수농장을 시작했다. 바나나는 노예의 주요 식량으로, 노예와 함께 배에 실려 갔다. 초기에는 사탕수수 농장 근처에 심어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하지만 바나나도 사탕수수처럼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아내고는 대규모 경작을 시작했다.

바나나는 현재 영국과 미국에서 단일품목으로 최대수익을 내는 과일이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져서 매일 아침식탁에 오를 수 있게 돼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탕수수로 인한 역사는 바나나로 이어지고, 그 후예들의 생활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상황이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