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이긴 직장인 “퇴직 압박 받거나 승진에서 불이익”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6-06 13: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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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은 하모 씨(37·여)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치고 지난해 말부터는 투병 전에 몸담았던 판촉물 디자인 업계에서 다시 일하기 위해 입사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면접에서 3년간 업무 공백이 생긴 이유를 솔직하게 답했더니 그 이후 면접 회사에선 채용에 대한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투병 사실을 숨기고 들어간 한 회사에선 정기검진을 받으려 연차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여 스스로 그만뒀다. 하 씨는 “암은 이겼지만 편견을 어떻게 이겨낼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대한암협회와 국립암센터가 지난달 암이 발병한 지 1년 이상 경과한 20∼60대 암 생존자 중 회사에 다니거나 취업 활동을 하고 있는 8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업무나 채용 과정에서 암 투병 경험을 이유로 차별을 겪었다는 응답이 69.5%로 나타났다. 암 생존자 중 근로자와 구직자만 대상으로 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차별 경험자 가운데 채용에서 탈락하는 등 능력 발휘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60.9%였다. △단합에서 배제되거나(37.1%) △퇴직을 권하는 말을 듣거나(33.6%) △승진에서 불이익을 겪는(27.2%)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르면 질병을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 하지만 실제 면접을 앞둔 암 생존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2017년 말 고환암 수술을 받은 A 씨(27)는 올해 초 한 건축사사무소에 사실상 합격 통보를 받았다가 돌연 “나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 A 씨는 “신체검사 때 수술 사실을 적은 것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터에 투병 경험을 숨기는 암 생존자의 비율은 26.4%였고 특히 20, 30대에선 이 비율이 40.7%로 높았다.

암 생존자들은 발병 초기엔 진료를 위한 업무 조정이나 유연근로가 절실하지만 발병 후 3년이 지나면 일반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발병 후 4년이 지난 생존자 중 54.5%는 회사와 동료에게 바라는 사항 1위로 ‘차별이나 배려 없는 동등한 대우’를 꼽았다. ‘업무 성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46%로 그 뒤를 이었다.


노동영 대한암협회장(서울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은 “암 생존자 대다수는 투병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암 생존자는 유약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2000년 44%에서 2016년 70.6%로 높아진 반면 ‘암은 불치병’이라는 직장 내 인식이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남대 연구팀이 지난해 3월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토대로 암 생존자 567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328명(57.8%)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직장으로 복귀하는 암 생존자는 30.5% 수준으로 유럽 평균(63.5%)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은숙 국립암센터장은 “암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파묻혀있기 보단 활발히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게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대한암협회와 국립암센터의 암 생존자 대상 조사 결과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 주최로 열리는 ‘암 생존자의 사회복귀 장려를 위한 간담회’에서 공개된다. 윤 의원은 “암 생존자가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지원하면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빈곤을 막을 뿐 아니라 생산가능인구의 증대로 이어져 사회적 이득도 크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