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어떻게 괴물이 됐을까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6-01 14: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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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LA 다저스 류현진의 성적표는 A+ 천지다. 평균자책점 항목에서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1점대(1.65)인 투수다. 또 9이닝당 볼넷(0.55개)도 1개 이하인 유일한 투수다. 볼넷 대(對) 삼진 비율(15.5)도 유일하게 10을 넘는 선수다. 이닝당 투구 수도 1위인데, 13.73개밖에 안 된다. 시즌 7승으로, 내셔널리그(NL) 다승 1위다.

지난해(2018년) 말 국내 야구 시상식에서 “2019시즌 목표는 20승”이라고 말했을 때, 상값으로 해준 립서비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허풍이 아니다. 지금 추세라면 산술적으로 21승도 가능하다. 사이영상 첫 수상 확률도 높다. 류현진은 분명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류현진은 모든 걸 타고났다. 키 190cm, 몸무게 118kg(프로필상 수치)으로 위풍당당하다. 몸이 커도 딱딱하면 말짱 도루묵인데, 그는 유연성까지 갖췄다. 큰 몸을 부드럽고 정밀하게 제어했다. 손 감각도 뛰어나 새로운 구종을 금세 익혔다. 야구 지능도 높아서 수 싸움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스포츠에서 선수를 A급과 B급으로 가르는 핵심 기준은 두뇌다.

타자들이 당할 수가 없었다. 2006년 고졸 신인으로 국내 프로야구에 입성해 그해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을 달성했다. 프로야구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메이저리그에 건너가 2013, 2014년 2년 연속 14승을 달성했다. 모든 게 쉬워 보이는, 그런 천재였다. 우리는 그를 찬양할 뿐, 참고할 건 없었다. ‘신은 불공평하다’는 게 그의 유일한 메시지였다.

그런 류현진은 한순간 모든 걸 잃었다. 어깨가 말썽을 부리더니, 결국 2015년 수술대에 올랐다. 어깨 수술을 받은 투수가 예전 기량을 회복할 확률은 7%에 불과했다. 거의 2년을 허비했다. 이 와중에 팔꿈치도 탈이 났고, 하체의 힘을 상체로 전달하는 허벅지 내전근까지 손상됐다. 당연히 구위는 시들해졌고, 한번 시들해진 구위는 회복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부상을 딛고 일어선 선수는 보기 힘들다. 그런데 류현진은 회복을 넘어, 오히려 더 큰 투수로 진화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많은 게 달라졌다. 스피드는 줄었지만, 제구력은 극도로 정교해졌다. 스트라이크존 경계 지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타자는 치면 땅볼이고, 안 치면 스트라이크였다. 휴스턴 댈러스 카이클의 투구 영상을 보고 배워, 신무기 컷패스트볼도 추가했다. 덕분에 타자를 윽박지르지 않고, 다양한 무기(투심, 체인지업, 커브, 컷패스트볼)로 현혹하며 더 큰 실리를 챙겼다.

류현진은 부상마저 제어했다. 지난달 세인트루이스전 때 내전근의 움직임이 묵직하게 느껴지자 자진해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지난해 5월 같은 부위 부상으로 석 달간 쉰 경험이 있다. 당시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던지다 탈이 났다. 그 실패를 학습했던 것이다. 2보 전진을 위해 과감히 1보 후퇴를 선택했다.

공을 던지는 것부터 몸 관리까지. 그는 모든 걸 다시 세팅한 것이다. 류현진은 부상(좌절)을 통해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크게 성장했다. 이런 과정을 정리하다 보니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체격도, 유연성도, 감각도, 야구 지능도 아닌 상황을 재정의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절을, 단지 시련이 아니라 더 높은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정의하고 견뎌낸 것이다. 류현진에게 좌절이 없었다면, 그는 14승 투수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우리 삶도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다. 주저앉지 않으면 재앙이 복이 되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요, 실패가 성공이 되는 인패위성(因敗爲成)이라. 류현진은 이제 마운드에서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