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환갑 맞아 여섯살 딸 데리고 3代가 함께 여행 떠났는데…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5-31 09: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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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첫 유럽여행이라고 들떠하셨는데 믿기질 않아요….”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침몰 사고로 실종된 김모 씨(38·여)의 가까운 지인 A 씨는 30일 인천 미추홀구 김 씨 집 앞에서 붉게 충혈된 눈으로 망연자실하게 말했다. 김 씨와 60대 부모, 6세 딸 등 일가족 4명은 29일 오후 9시 5분경(현지 시간)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을 탔다가 크루즈선과의 추돌 사고로 모두 실종됐다. 김 씨 가족의 실종 소식을 접하자마자 인천으로 달려온 A 씨는 애타는 표정으로 “혹시 더 구조된 상황 같은 것 나온 게 있나요…”라고 물었다.





○ 33명 중 27명이 가족 여행

A 씨에 따르면 김 씨는 환갑을 맞도록 유럽에 가본 적 없는 어머니(60)를 위해 3대 일가족 여행을 계획했다. 김 씨 어머니가 평소 유럽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김 씨 가족은 5월 25일 인천공항에서 독일 뮌헨으로 출발해 8박 9일 일정으로 독일∼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독일을 거쳐 다음 달 2일 귀국할 예정이었다.


김 씨 3대 가족은 미추홀구의 상가 건물 3층에서 함께 살았다. 김 씨 아버지는 평생 화물차 운전사로 일해 모은 돈으로 가족의 터전을 꾸렸다. 김 씨는 건물 2층에서 피부관리 업체를 운영하며 부모와 딸을 살뜰히 챙겼다. A 씨는 “여행 중인 김 씨와 자주 연락했었는데 ‘잘 다니고 있다’고 했었다”며 “김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아이도 나를 잘 따랐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사고를 당한 33명 중 27명이 김 씨처럼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운명이 엇갈렸다. 정모 씨(28)는 최근 직장을 그만둔 누나(32)와 기분 전환을 하러 유럽 여행을 갔다가 누나만 구조됐다. 정 씨 누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8박 9일 동안 잘해보자’며 유럽 여행 중인 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 사이 좋았던 올케 시누이… 올케만 구조

유람선에 함께 탔던 전남 여수 출신의 올케와 시누이 3명 등 5명 중 올케만 구조됐다. 여수에 사는 황모 씨(50·여)는 큰시누이 김모 씨(45), 김 씨의 딸(21), 둘째 시누이(42), 막내 시누이(40)와 함께 탔다가 혼자 구조됐다. 황 씨는 세 시누이와 가깝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황 씨의 지인은 “이들 5명은 평소 사이좋게 지냈고 2, 3년 전부터 가족여행을 위해 돈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전에도 간혹 함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윤모 씨(32·여)는 어머니(55), 외삼촌(61), 이모(62)와 여행을 갔다가 윤 씨와 어머니만 구조됐다. 단둘이 여행을 왔다가 참사를 당한 부부도 3쌍 있었다. 최고령자인 석모 씨(72) 부부 중 부인(65)만 구조됐고 나머지 5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50년간 우정을 이어 온 고교 동창 60대 3명이 여행길에 올랐다가 2명이 실종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모 씨(66·여), 정모 씨(64·여), 안모 씨(65·여)는 서울의 한 여고 출신으로 국내외 여행을 함께 다니며 각별한 우정을 쌓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구조됐으나 정 씨와 안 씨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 “사람 잘 챙기던 가이드 누나였는데…”

부다페스트에서 현지 가이드로 한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유람선에 올랐던 30대 여성 강모 씨도 구조되지 못했다. 강 씨는 8년 전 혼자 헝가리에 와서 가이드 일을 해왔는데 실력이 탁월해 후배들이 늘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다고 한다. 사고 전날 부다페스트 이슈트반 성당 앞에서 강 씨를 만났다는 장모 씨(28)는 “밝고 주변 사람을 잘 챙겨주던 누나였다”며 “누나가 ‘요즘에 많이 바쁜데 나중에 밥 한번 먹자’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면서 울먹였다.

현지에서 사진작가로 동승했던 B 씨(28)는 한국에서 사진작가로 일하다가 유럽 여행객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프리랜서로 일하려고 이달 초 부다페스트로 이사 왔다고 한다. B 씨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려고 유람선에 올랐다. 한국에서부터 가이드로 동행했던 이모 씨(36·여)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씨는 영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와 능통한 영어 실력으로 오랜 기간 가이드로 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를 당한 33명 중 23명이 여성이었다. 33명 중 21명이 50대 이상이었고 6세 여아도 1명 있었다. 20대는 3명, 30대는 5명, 40대는 3명으로 파악됐다.

인천=박상준 speakup@donga.com / 김소영·조동주·이경진 / 여수=이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