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女 공채 1기’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녀…‘밥 리더십’이 비결?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5-31 08:00:01
공유하기 닫기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직원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e메일을 받는다. 발신인은 이 팀의 송명주 상무(49). 그는 주말 저녁 집에서 한 주를 정리하면서 e메일을 쓰고 예약 발송으로 걸어둔다. e메일에는 팀이 어떤 일을 하고 이 일이 회사 사업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때로는 팀 업무를 돌아보기도 한다.

송 상무가 이처럼 e메일을 보내는 것은 어느 순간 업무 끝단에 있는 막내 직원은 ‘왜 위에서 같은 일을 시키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더러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어서 지시했는데 지시 내용이 여러 단계를 건너뛰면서 본래 취지가 바뀔 수도 있다. 조직에서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는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직원들이 다들 제각기 열심히 하는데도 조직이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은 방향이 달라서이기 때문”이라며 “e메일을 주기적으로 보내 모두가 같은 목표를 지니고 일하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고 말했다.





송명주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상무

송 상무는 삼성 여성 공채 1기(1993년 입사)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여성 임원이다. 삼성 여성 공채 1기는 139명. 중도에 관뒀거나 임원으로 승진해도 퇴직했다. 현재 임원 6년차인 송 상무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외국인 동료들과 일할 때에나 주재원으로 일할 때에나 직원들을 집에서 소박한 밥을 해서 먹이는 ‘밥 푸는 리더십’을 펼쳤고, 후배 직원들에게는 무언가를 지시하기보다는 스스로 일하게끔 도와주는 서포터 역할을 자처했다.

이런 그 역시도 회사 생활에서 위기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진다 싶으면 사내(社內)에서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했고 위기가 찾아올 때면 동료들에게 스스럼없이 도움을 구해 버텨냈다. 그는 “회사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며 “별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일도, 지나칠 수 있는 사람도 꼼꼼히 살펴보면 나중에 뜻하지 않는 자산이 되어 돌아올 때가 많다”고 말했다. 송 상무를 만나 봤다.




●여대생 채용 기피 시절…PD지망생, 삼성으로



1992년 대학 졸업 이후 방송국 PD 시험에 응시했다가 미끄러진 그는 일반기업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만 해도 여대생의 대기업 입사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석 달 남짓 중소기업 취업을 준비하다가 좌절했다. 기업들은 대체로 여대생 채용을 기피했다. 설령 뽑아도 ‘용모 단정’이라는 조건을 내건 곳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삼성의 공채 광고가 눈에 띄었다.


‘전문가에는 남녀가 없습니다. 지금, 프로비즈니스 우먼의 세계로 오십시오!’



삼성의 여성 공채 광고(왼쪽)와 동아일보 1992년 10월 9일자에 게재된 삼성의 여성 채용 기사

바로 원서를 냈고 다행히도 붙었다. 이듬해 입사해 삼성전자 생활 가전 부문으로 배치 받은 그는 가전 상품 기획을 맡게 됐다. 입사하고 보니 여자 선배들은 특채로 들어왔거나 디자인이나 비서 등 일부 분야에서 일했다. 당시 여성 화장실은 턱없이 부족했을 정도로 여성 직원은 낯선 존재였다. 선배들은 그를 가리키며 “요새 여사원도 공채로 뽑느냐”며 신기해했지만, 그는 웬만한 남성 직원 못지않게 일을 해냈다.

10년쯤 지나니 일이 손에 익었고 편해졌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면 호기심이 많았던 그에게는 흥미가 덜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침 사내 게시판에 구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 핵심 부서로 꼽혔던 글로벌전략그룹(GSG)에서 일할 직원을 찾는다는 것. GSG는 이건희 삼성 회장 지시에 따라 1997년부터 미국 아이비리그 등에서 경영학석사(MBA) 출신 인재를 뽑아 삼성 계열사 컨설팅을 맡기던 곳. 그룹 미래전략과 사업방향을 수립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했다. 공고를 보자마자 설¤다. 좋은 기회가 왔다는 판단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10년차, 일이 손에 익자 새로운 일에 손들고 도전



그는 바로 GSG에 지원했고, GSG의 인사·기획·총무 등 지원을 맡는 팀에 배치됐다. 안전지대(comfort zone)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한 것이다. 이 곳은 같은 회사였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다. 외국인 동료들의 문화는 기존 한국 회사 문화와 생판 달랐다.

당시만 해도 ‘위에서 하라’고 하면 하던 시기였지만 외국인들은 달랐다. 지시 사항을 외국인들에게 전달하면 실행이 안됐다. “왜”라는 부분을 충분히 설명해야 실행(execution)이 뒤따라왔다.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절대 직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처음엔 외국인과 일하는 방식이 달라 힘들었지만 외국인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법을 차츰 깨달으면서 이른바 ‘문화 적응력(cultural adaptiveness)’을 기르게 됐죠. 이런 경험이 없었더라면 훗날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어려웠을 것 같아요.”



출처 Pixabay

송 상무는 외국인 동료들을 위한 하우스파티도 해봤다. 파티라고 해봤자 거창한 건 아니었다. 대형마트에서 와인 잔 30개를 사오고. 닭볶음탕 같은 음식을 내놓았다. 당시 삼성 다른 계열사에 다녔던 남편과 아들도 같이 파티를 준비하면서 외국인 동료들을 맞이했다.

“세 시간 동안 외국인 동료들을 초대해 대접하고, 손님들이 나가자마자 온 식구가 뻗었어요. 치우지도 않고 바로 누워서 자버렸죠. 저희 가족에게는 재미난 경험이었어요. 당시 일했던 외국인 동료 중 아직도 저희 집 파티를 꺼내는 사람이 있죠.”

꼭 무얼 바라고 외국인 동료들과의 관계를 쌓은 건 아니었지만, 이들과의 관계는 성과로 돌아왔다. 2004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프랑스에서 권위 있는 훈장인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를 받았을 때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받은 이건희 삼성 회장. 동아일보DB

GSG에 프랑스 직원이 있었는데, 이 직원의 친구가 다니는 프랑스 유력 언론인 르몽드를 통해 이 회장의 훈장 수상 소식뿐 아니라 GSG까지 소개할 수 있었다. 삼성이 해외 인재를 유치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GSG가 해외 유력 언론에 자세히 소개되면서 더 우수한 인재를 유치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니 송 상무 스스로가 커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감을 얻었다. ’하버드, MIT, 스탠포드를 나와도 사람은 같구나‘, ’피부 색깔은 달라도 사람은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당시 야간대학원 경영학석사(MBA) 코스도 밟으며 공부를 더 했다.

“사람은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고 생각해요. 회사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있을 수 있죠. 매일 하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하면서 스스로의 기회를 넓히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많이 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나를 따르라‘보다 ’이거 해볼까‘ 리더십



송 상무는 GSG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초년병 시절, 부서장과의 간담회에서 한 여성 후배가 “남자 동기들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데, 왜 여자는 예외냐”고 물었다. 회사는 이게 여성 직원들을 위한 배려라고 하지만, 개인 선택의 문제인데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유리천정(glass ceiling)이 도처에 깔려 있었던 셈이었다. 송 상무도 함께 자리한 여성 직원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젠가 해외 주재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간담회 이후 사내 제도가 바뀌었다. 여성이라고 해서 해외 주재원에서 배제되지 않았고 송 상무 역시 2009년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파견갈 수 있게 됐다. 그는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 9개국을 지원·관리하는 지역프로젝트매니저(RPM)가 됐다.



송명주 삼성전자 상무가 주재원 생활을 한 싱가포르. 동아일보DB

조직원들의 역량을 잘 이끌어내야 하는 관리자(부장)가 되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조직원 스스로 일하게 하는 것에 신경 썼다. 우선 각국 법인의 성과를 점검하고 모니터링하고 피드백 하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로컬 직원(현지 채용인)을 믿어주려 했다. 그래야 동기(motivation) 부여를 할 수 있다는 것. ’나를 따르라‘ 식의 리더십이 아니라, ’이런 게 있는데 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라고 제안하는 식을 선호했다.

“상사가 처음부터 뭔가를 하자고 구체적으로 말해버리면, 실행되기 힘든 이상에 그치게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원의 역량과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해서 직원 스스로 하게 해야, 그 일은 직원 ’자기 일‘이 되고, 스스로도 오너십을 갖고 몰입하더라고요.”

그 역시도 초임 부장 시절에는 직원들이 일을 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하루에 한 번씩, 빨리 하라고 재촉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직원들이 스스로 하는 건 줄어들었다. 직원들 스스로 주도해나가는 게 없기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결국 송 상무는 직원을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게 스스로의 안달복달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게 됐다.

송 상무 특유의 ’밥 푸는 리더십‘도 동남아에서 발휘됐다. 에어컨은 직원들이 설치·유지·보수해주는 특성상 서비스의 질이 중요했다. 그는 각국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참석하는 워크숍을 싱가포르에서 열고, 집에서 한식을 대접했다.

본사에서 싱가포르에 출장 오는 후배 직원들을 맞이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식을 아주 간단히 만들어 밥을 먹였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성의가 전달됐고 신뢰를 얻었다. 목적을 갖고 대접한 건 아니었지만, 후배들은 훗날 송 상무가 업무상 필요한 일이 있어서 연락할 때면 기꺼이 지원에 나서주는 등의 보답을 했다.



●의사결정권자 설득은 각개격파



그는 동남아 시장에서 에어컨에 주목했다.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놓는 현지 특성상 잘 키우면 효자가 될 제품이었지만, 현지 점유율 5~6위에 머물렀다.

“당시 동남아에는 에어컨을 한국이나 중국에서 제조해 들여와 팔다보니 현지에서는 비싼 축에 속했어요. 또 사업을 키우려면 현지에 맞는 제품이 있어야 했지만, 제품 라인업이 다소 빈약했어요.”

’동남아 특성에 적합한 에어컨을 개발할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 빠졌다. 설사 현지 특성에 맞춘 제품을 개발해도 매출을 늘리려면 적기 공급이 중요한데 한국에서 중국에서 공급받는 이상 일정 시간이 걸렸다.



동아일보DB

직원들과 고민해보니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난방 등 불필요한 스펙을 없애고 냉방만 할 수 있게 개발하면 재료비가 줄었다. 또 동남아 현지에서 생산하면 물류비와 재고비 부담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은 관문은 사업부 설득. 송 상무는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을 일일이 연락하고 만나면서 각개격파를 했다.

“싸리나무도 다발로 자르면 자르기 힘든데, 하나씩 자르면 잘 부러지잖아요.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에 역점을 뒀어요. 시간이 걸려도 다리품을 팔려고 했어요. 80% 이상의 대다수 마음이 기울어지면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죠.”

직원들과 함께 설득해 현지에서 스펙을 낮춘 에어컨을 생산하기로 결정했고, 삼성전자 에어컨의 현지 시장 점유율을 3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주재원 생활이 끝나면서 임원으로 승진해 2014년 한국에 들어왔다.



●직원들에게 매주 e메일 보내 비전 공유



현재 송 상무는 임원 6년차에 접어들었다. 임원이 되니 책임감도 더 커졌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성과에 따라 조직원들의 사내 위상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비전을 공유하면 직원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현재 냉장기 세탁기 등 생활 가전에서 다양한 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매 예상 정확도를 높이고, 회사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온·오프라인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제품에 대한 소비자 의견 등을 수집·분석하는 소셜 리스닝(social listening) 기법을 마케팅에 체계적으로 적용해 영업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송명주 삼성전자 상무

“기존 소비자 조사는 반 년 정도 늦게 나와 제품이 이미 출시된 뒤 한 발 늦게 피드백을 받아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바로 적용하는 거죠. 제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제품 특성이 잘 전달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삼성 가전다움‘이라는 브랜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그는 “일 잘한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초긍정 마인드를 지녔다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새로운 변화와 성과를 만드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왜 하지 말아야하는지부터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근거 없는 긍정은 안 되겠지만 합리적인 선에서 마음과 생각의 문을 열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부터 생각해 보면 스스로에게 기회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 워킹맘, 임원 되기까지 ▼



송 상무는 아들을 한 명 둔 ’워킹맘‘이기도 하다. 자녀로 인해 회사 생활에서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그가 출근할 때면 아들은 목 놓아 울어버렸다. 그럴 때면 현관문 앞에서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나도 전업 주부처럼 유모차 끌고 볕 좋은 따뜻한 공원에 나가봤으면….‘

송 상무는 당시 과장, 차장 시절로 회사에서는 한창 일하면서 성과를 많이 올리고, 그 성과를 보여줘야 했을 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회사에선 일을 가장 많이 해야 하면서도 집에선 아이에게 부모의 손길을 많이 줘야 했던 시기. 그는 “일하는 여성은 가족이 생기면 회사 생활에서 위기를 더 자주 겪기 쉽다”고 말했다. 이런 위기를 그는 어떻게 넘겼을까.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저는 ’개인으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 ’딸로서의 나‘ 등 네 가지 정체성을 지니고 사는데 그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생애 전반으로 걸쳤을 때에 엄마로서 중요할 때가 있고, 아내로서 중요할 때가 있고…. 시기에 따라 다르죠.”

송 상무는 이를 ’아메바 정체성‘이라 규정했다.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그 가운데에 스스로 밸런스를 잡고 있으면 위기가 생각보다는 쉽게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위기 시 그의 원칙은 이렇다. ’첫째, 한 순간에는 내가 힘들지만, 영원히 힘든 것도 아니다. 둘째 완벽하게 잘할 거라 생각지 말자. 셋째, 잠시 힘들지만 나는 가운데로 오게 되어 있다,‘

아이에게도 ’다 걸기‘를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가 어렸을 때에는 출장 다녀와서는 숙제를 다 했는지 확인하고 아이한테 스트레스 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말로부터 실마리를 얻었다. 자녀에게 세 가지만 할 것. 사랑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그는 “회사를 다니기에 어차피 불가능하지만, 저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한테 집중하면 아이한테도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아들과 함께 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아들에게는 놀이삼아 공부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줬다. 교육 목적이라기보다는 송 상무 스스로도 공부해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경영학대학원이었기에 아이는 자신의 좋아하는 자동차의 경우 주요 회사들의 계보를 쭉쭉 외는 경지에 이르렀다. 다른 집과는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하다보니 아이와 대화도 많아졌다. 어느 순간 아들은 “엄마, 우리 반에 엄마랑 얘기를 많이 하는 얘가 나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그는 완벽해지지 않으려 했고 그 위기의 파고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동시에 상사 등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시기다‘, ’아이가 유치원에서일이 있으니 일찍 가야겠다‘ 등을 미리 솔직히 알려놓으니, 이해하고 도와줬다.

“회사 생활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혼자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인은 힘들어도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만 하다보면 사람들이 오히려 몰라서 못 도와주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거든요. 고민은 나눠서 해결할 수 있어요. ’뜨거운 감자‘는 주변에 던지세요.”

단 전제는 있다. 평소에 신뢰를 쌓아놓아야 도움이 통한다.

“SOS가 너무 잦으면 문제겠지만, 조직에서는 몇 개월만 같이 일해 봐도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구축되잖아요. 일의 기본은 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고, 정말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거죠. 뺀들뺀들 일도 안하면서 남에게 모든 걸 맡기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김유영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