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데 눈물이 나는… ‘봉테일’이 그려낸 한국인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5-29 12: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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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은 상징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다. 극 중 부부로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과 충숙(장혜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의 장기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셀프 오마주를) 의도하지 않았다”지만, 전작들에서 보인 봉 감독 특유의 디테일이 ‘기생충’ 곳곳에 포진해 있다. 131분 동안 블랙 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서사에 스릴러 특유의 공포, 긴장감이 한데 어우러져 장르적 일관성은 보란 듯이 파괴됐다.

시작부터 카메라는 햇살이 간헐적으로 스며드는 반지하에 걸린 빨래들을 담는다. 꼬질꼬질한 양말들의 주인은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가족.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고 방역소독제가 창문으로 스며드는, 봉 감독의 말대로 “분명히 지하인데 지상으로 믿고 싶어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비좁은 반지하방에 오순도순 모여 살지만, 기택네는 평화롭다. 요금을 내지 못해 휴대전화가 끊기고, 남의 집 와이파이를 몰래 쓰지만 처지를 비관하는 이가 없다. 장미(고수희)와 현남(배두나)이 서로를 위로하는 문방구(‘플란다스의 개’), 강두(송강호)의 가족이 함께 몸을 맞대는 매점(‘괴물’)처럼 좁은 공간이 주는 그 안정감이다.

반면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을 경영하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화려한 노란 조명이 감도는 언덕 위 저택에 산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와 극과 극의 공간. 접점이 없을 것만 같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 집에 과외 선생으로 들어가면서 한 공간에 어우러진다. 드넓은 논두렁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지거나(‘살인의 추억’) 버스 창가로 보이는 한강 둔치에 괴물이 출몰하는(‘괴물)’, 넓은 공간이 주는 정서적 불안감은 ‘기생충’에서도 반복된다.

‘설국열차’가 머리 칸부터 꼬리 칸까지 이어지는 계층 구조를 수평적으로 담아냈다면 ‘기생충’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이를 형상화한다. 제작 전 다시 봤다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년)처럼 극 후반부 계단은 섬뜩한 공간이 된다. “지하철 냄새”, “행주 냄새” 등 냄새도 빈부를 구별 짓는 중요한 장치. 봉 감독은 “부자와 가난한 자는 동선이 달라 서로 냄새를 맡을 기회가 없다. 냄새는 영화에서 유일한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라고 설명한다.


부자의 환경에 자신을 맞춰 가는 빈자의 처절함은 ‘기생’을 유발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두 4인 가족 모두 누구 하나 선악으로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봉 감독은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악당이 아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끝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더’ 이후 10년 만의 한국어 영화라 그런지 봉 감독 특유의 ‘말맛’은 이 영화가 지닌 큰 무기. 한국 관객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디테일들도 반갑다. 클래식 선율과 롱테이크, 슬로모션의 이질적인 조합은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최우식의 노래는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의 일부라고 하니 가사를 곱씹어 보길 권한다. 5월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