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배우 김염 “친일 영화를 찍느니 차라리 영화를 그만두겠소”

동아일보
동아일보2019-06-02 1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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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의 문화예술인을 위한 추모공원 ‘푸서우위안’에 잠들어 있는 김염의 묘(왼쪽 사진). 한재은 단국대 초빙교수(오른쪽 사진 가운데)는 5월24일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한중 공동학술대회에서 항일 배우로서 김염의 삶을 조명하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상하이=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5월 25일 중국 경제 중심인 상하이의 북적한 시내에서 서남쪽 항저우 방향으로 약 45km를 이동해 도착한 교외 공원묘지인 푸서우위안(福壽園). 이곳은 상하이에서 활동했던 유명 배우와 시인, 음악가 등이 잠들어 있는, 문화예술인을 위한 추모공원이다.

공원 내부로 들어가니 1930년대 중국 최고의 인기 여배우 롼링위(阮玲玉)의 생전 모습을 조각상으로 표현한 추모비와 색소폰을 형상화한 기념비, 루쉰(魯迅)의 아내인 쉬광핑(許廣平) 묘까지 불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추모 공간이 나타났다.



입구에서 300m가량 떨어진 묘역으로 들어가 보면 아들 김첩(金捷)과 함께 묻혀 있는 인물이 나온다. “조선인 출신인 그는 영화 황제(映畵 皇帝)로 불렸다”는 비석 내용이 영화처럼 살다 간 그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있었다. 1930년대 중국 최고의 인기 배우이자 일제의 침략에 맞서 영화로 독립운동을 펼친 김염(金焰·1910∼1983)이 잠들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자 한국 영화사 100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중국 학계에서 항일 예술인에 대한 조명을 새롭게 진행하고 있다. 5월 24일 중국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열린 한중 공동 학술대회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중국 상하이’에서는 상하이를 중심으로 일제에 맞선 한중의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1930년대 중국에서 ‘영화 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린 김염은 수십 편의 항일 영화에 출연하며 예술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한재은 단국대 초빙교수 제공
주목을 끈 것은 영화 황제 ‘김염’에 대한 연구다. 한재은 단국대 초빙교수는 “‘영화 황제’ 김염의 항일 영화인 형상”이라는 논문을 공개하며 “중국의 최고 인기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예술로써 항일 독립투쟁에 나선 김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푸단대 한국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했다.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염의 집안은 독립운동가로 가득하다. 아버지 김필순(1878∼1919)은 1908년 제중원의학교 1회 졸업생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사다. 구한말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의 주요 인물이었던 그는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고향을 떠나 만주에서 독립군 주치의로 활동하며 의술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1919년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여읜 김염은 중국 상하이로 이동해 고모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무총장 등을 지낸 김규식(1881∼1950)에게 의탁한다.

김염은 1928년 우연히 단역에 발탁되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처음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듬해 쑨위(孫瑜) 감독의 눈에 띄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1929년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풍류검객’이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면서 일약 대스타로 거듭났다. 이때부터 10여 년간 중국 영화계를 호령한 그는 1933년 영화 전문 신문사인 ‘전성일보’에서 진행한 인기투표에서 남자 배우 1위를 차지하며 ‘영화 황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단순히 인기 배우로서의 삶이 아니었다. 1932년 상하이 사변을 일으키며 대륙 침략을 노골화한 일제는 당시 상하이의 대스타 김염에게 친일 영화에 출연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찍지 않을지언정 아무 의미 없는 반진보적인 영화를 찍어 관중에게 해독이 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제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다. 이후 그는 일제에 맞서는 내용을 담은 영화 ‘들장미(野매괴)’, ‘대로(大路)’ 등에 출연하며 영화로 독립운동을 펼쳐갔다.

한 교수는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 남은 그는 중국 정부로부터 ‘국가 1급 배우’로 선정되는 등 한국 출신 항일 배우로서의 삶을 이어갔다”며 “함께 항일투쟁에 나섰던 경험이 있는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역사 연구를 진행한다면 양국의 경색된 관계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